탄식이 터졌다. 나로호 3차 발사가 연료공급관 문제로 늦춰지면서의 일이다. 과기계 곳곳에서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에 다름 아니다.
무엇 때문일까. 국가 최고 지도자의 과학기술 입국 의지와 국가 정책의 부재 탓이 가장 클 것이다.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구호는 옛이야기가 됐고 국가 정책은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됐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논문 수 기준으로 2002년 13위에서 2010년에는 11위에 오르는 등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에 중국은 6위에서 2위권으로 치솟았다.
과교흥국(科敎興國)이라 했던가. 과학과 교육으로 국가를 부흥시키겠다는 중국의 야심찬 구호다. 마오쩌둥에서 장쩌민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과학기술 입국을 국정 지표로 삼았다. 양탄일성(兩彈一星)이라는 구체성도 목표에 뒀다. 원자탄·수소탄, 인공위성을 뜻하는 양탄일성이라는 목표는 무인 우주선은 물론이고 유인 우주선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핵심은 사람이다. 과교흥국의 목표와 목적성에서 사람이 없다면 사상누각이다. 첸쉐썬(錢學森)의 예가 대표적이다. 첸쉐썬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 국방과학위원회 미사일팀장, 독일 미사일기지 조사위원장 등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사일·인공위성 전략사업의 핵심 역할을 했다.
1950년, 그런 그가 고국인 중국행을 감행했다. 중국 정부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한 결과다. 한 과학자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스파이 혐의로 첨예하게 맞섰다. 세기적 화제를 뿌린 사건은 결국 양국 간 거물 스파이(?) 맞교환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문제는 해결 방식이다. 국가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양보한 전례는 흔치 않다. 그만큼 중국 측 의지가 남달랐다는 얘기다. 귀국한 그는 인공위성을 띄우기 위해서는 1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체 간섭하지 말고 투자와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처음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치고 다음 5년은 응용과학을 가르치고 나머지 5년은 실제 로켓을 제작해서 띄우겠다는 것이다.
15년 후, 그는 약속을 지켰다. 시간과 투자, 인력이 제공되고 간섭이 배제된 데 따른 장기적인 성과다. 결과적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총체, 동력, 유도탄 제조, 증기동력, 구조, 컴퓨터, 질량공제 등의 지식이 풍부해졌다. 로켓, 유도탄, 우주설비 연구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원자탄, 수소탄도 만들었다.
우리는 어떤가. 1980년대 이후 과학기술·이공계 인재 양성은 먼 나라 얘기가 됐다. 당시 전자공학과·컴퓨터공학과·물리학과에는 최고 인재가 모여들었다. 과학기술 입국을 주창하면서 처우가 대폭 높아지고 사회 인식이 바뀐 덕분이었다. 정보통신 강국 도약의 밑바탕이 됐다.
지금은 어떤가. 취업 문제보다 급한 것은 처우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지만 처우는 제자리였고 퇴직 연령은 빨라졌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근무환경과 급여수준은 최고 고려사항이 됐다. 과학기술·이공계는 직업의 무덤이 됐다.
과학기술 입국에 적신호가 켜졌다. 단기 성과 위주의 토목건설에 올인했던 MB정부의 무관심은 이를 더욱 가중시켰다. 대학이 먼저 무너졌다. 이공계·자연계 대학원 진학률은 이제 대놓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처지가 됐다. 학교에 학생이 없는 판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으랴.
인재양성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다. 나로호 발사 실패는 과학기술 정책에 기인한다. 사람은 그중 으뜸이다. 우리나라에 중국처럼 `첸쉐썬`을 삼고초려해 모실 수 있는 지도자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후진타오는 아예 설날이면 최고 과학자 첸쉐썬을 찾아 세배를 하는 등 극진하게 예를 다했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박승정 정보사회총괄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