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인터넷 버블 당시와 다른 점은 좀 신중해졌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기술과 혁신만 있다면 두 손 들어 환영했습니다. 이제는 두 가지 뿐만 아니라 숫자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루 호프만 호프만에이전시 대표가 이야기하는 숫자는 `수익`을 말한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털·엔젤 등 투자사들이 잠재성과 가능성 못지않게 수익모델을 꼼꼼히 챙겨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호프만 대표는 혁신 벤처의 요람으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산증인이다. 1981년 실리콘밸리에 입성한 후 1987년 호프만에이전시를 설립하는 등 30년 넘게 이곳을 지켰다. 햇볕이 쨍쨍 들 때는 물론이고 비바람이 불 때도 한결 같이 실리콘밸리와 함께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호프만 대표는 “경기 불황이 미국을 강타했지만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기술이 점차 평준화하면서 덩달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창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분위기를 틈타 실리콘밸리로 각 나라에서 혁신기업이 몰려들면서 특유의 선순환 창업 생태계가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호프만 대표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 환경을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힘 줘 말했다. “하나는 유형적인 측면(intellectual side)입니다. 사람·기술·자본과 같은 보이는 지식재산입니다. 또 하는 무형적인 측면(intangible side)입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패배를 성공을 위한 값진 경험으로 생각하는 풍토입니다. 한국은 유형적인 지식재산은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무형적인 자산이 부족합니다. 이를 보완하면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생태계를 갖출 수 있습니다.”
호프만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지치지 않고 혁신이 일어나는 배경은 실패를 또 다른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달라진 실리콘밸리에서 여전히 IT는 주된 관심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무용론이 제기되지만 IT는 여전히 `핫 아이템`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당선되면서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IT자체 보다는 이와 결합한 다양한 융합서비스가 조명을 받을 것입니다. 현지에서 관심이 높은 분야는 SW서비스로 불리는 `사스(SaaS)`와 `클라우딩 컴퓨팅`입니다. 기업을 겨냥한 모바일 앱 분야도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호프만 대표는 수많은 스타트업을 미국에 진출시킨 장본인이다. 국내에서도 몇 개 기업이 호프만에이전시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대박을 꿈꾸고 있다. 이들 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거두자 스타트업 조언자로서도 명성이 높다. 그는 `비즈니스 시각에서 본 스토리텔링 기법(The art of storytelling through a business prism)`이라는 주제로 이쉬마엘의 코너(Ishmael`s Corner)`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쉬마엘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백경)`에 나오는 인물이다.
“스타트업은 누구나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을 꿈꿉니다. 이를 위해 실리콘밸리로 몰려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치와 환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품입니다. 세계무대 혹은 진출하는 나라의 소비자를 휘어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이 필요합니다. 제품 경쟁력은 결국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게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비결입니다.” 호프만 대표는 현지의 문화적인 색깔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소비자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리콘밸리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을 잇는 간판 기업은 아마도 모바일과 소셜 분야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힘 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