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분야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지난 30년간 통신 분야 후진국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퀀텀점프` 했다.
세계는 우리나라가 `ICT 신화`를 창조했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이겨낸 정보통신 분야 수많은 인재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1992년 선경그룹의 제2 이동통신사업권 획득과 포기는 지울 수 없는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후일 자진 반납이 아닌 정부가 정치권의 외압을 받아 민간기업의 사업권 반납을 강요한, 정치적 결정이었음이 밝혀졌다.
1994년 정보통신부 출범에 이어 2년 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서비스 세계 첫 상용화는 우리나라 이통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대사건이다.
이어 1997년 한국통신프리텔(KTF), 한솔PCS(한솔엠닷컴으로 사명변경), LG텔레콤의 PCS 3사 출범은 이동통신 요금인하, 서비스 품질 향상, 휴대폰산업 발전 등 효과를 비롯, 이통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1999년 초고속인터넷 ADSL(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비대칭형 디지털 가입자망) 상용화는 우리나라를 ICT 강국으로 이끄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지난 2008년 2월 우리나라가 유무선 통신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정보통신부 폐지는 아쉬운 역사다. 정통부 폐지 이후 부작용과 폐혜가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IPTV 상용화는 방송통신 융합이 본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9년 11월 국내 시장에 선보인 아이폰은 우리나라 이통 시장의 패러다임과 생태계를 일거에 변화시킨 사건 중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2012년 6월 카카오가 카카오톡으로 음성통화가 가능한 `보이스톡`을 출시하며 촉발된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허용 논란은 `망 중립성` 논쟁으로 비화되는 등 치열한 갑론을박을 야기했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