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전자를 아는 자만 살아남는다

“전자를 아는 자만이 새 시대에 살아남는다.”

1982년 9월 조병화 시인은 전자시보(전자신문의 옛이름) 창간축시에서 우리가 살기 좋은 기계문명 시대에 있다고 했다. 위대한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전자의 시대를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새 시대를 개척할 사람 또한 전자를 아는 자뿐이며,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만들 사람 역시 전자를 지배하는 자뿐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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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뿐이었다. 자원도 기술도 없었다. 오로지 투지 넘치는 사람만으로 우리는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 후로 꼭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우리는 전자를 지배했고, 새 시대를 개척해 미지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세계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핵심 국가가 됐다.

30년 전 우리가 메모리 산업에 발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미국과 일본은 코웃음 쳤다. 전자강국이 되겠다고 했을 때 선진국은 비웃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1987년 무역흑자 원년을 달성한 것도, 지금의 경제부국이 된 것도 모두 그 전자산업 덕택이다. 한국은 전자산업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견제도 심했다. 1985년 이후 미국, 유럽연합은 한국산 반도체, 전자제품에 대해 경쟁적으로 반덤핑 제소했다. 우리는 우리를 비웃던 그들을 위협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들의 견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오히려 더 세졌다. 이렇게 우리는 전자산업을 무기로 선진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선진국이 돼 있다.

강산이 세 번 변한 지금 우리나라는 전자산업 최강국 지위에 올랐다. 메모리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LCD TV, 휴대폰 및 스마트폰, 롱텀에벌루션(LTE) 통신기술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세계 1위 국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선진기술 추종국에서 세계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최강국으로 변모했다. 진화에 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선진국의 코웃음이나 비아냥은 더 이상 없다.

우리 전자산업 역사에 순탄한 시기란 없었다. 시작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고통 그 자체였다. 성장과정에서 수 없이 많은 위협과 위기를 맞닥뜨려야 했다. 어느새 낭중지추가 된 우리는 무수한 견제와 경쟁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는 이 모두를 극복했다. 지난 30년간 전자산업 발전을 통해 국력을 키웠고, 경쟁자를 제치고 앞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다.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게 하드웨어 테크놀로지 때문일까? 아니다. 그 근간에는 우리 민족의 저력과 근성, 창의력이 자리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와 유사 이래 최고의 과학적인 언어로 평가되는 한글 등 문화를 담아낼 완벽한 그릇도 가졌다. 과학기술 선진국 이전에 우리는 분명 문화 선진국이었다. 오늘날 문화한류에 세계가 감탄하고, 요동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문화적·기술적 우위 모두를 갖춘 몇 안 되는 국가이니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이제는 융합이다. 기술과 문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통산업과 첨단산업이 융합될 때 그 가치는 배가된다. 융합의 골격은 30년 전 시인이 말한 전자다. 다시 시작이다. 지난 30년 간 이룬 성과는 다시 달리는 데 필요한 자양분일 뿐이다. 30년간 우리가 천지개벽을 이뤄냈듯이 앞으로의 30년에서도 제2, 제3의 개벽을 일으켜야 한다. 새로운 도전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 도전 또한 전자를 아는 자가 성취할 것이요, 그 후 세계를 지배할 존재도 전자를 아는 자일 것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jh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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