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의 `지배자` NHN은 2000년 인터넷 검색 포털 네이버와 온라인 게임 서비스 한게임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여기에 마케팅 솔루션 업체 원큐와 검색 솔루션 개발 업체 서치솔루션도 함께 합쳐졌다.

[100대 사건_053] 네이버-한게임 합병, NHN 탄생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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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카카오 의장(당시 한게임 사장)

NHN은 `Next Human Network`의 약자다. 합병 후 2001년 네이버컴에서 바뀐 사명이다. 검색과 게임이라는 인터넷의 핵심 수익 모델을 모두 갖춘,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이 탄생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오늘날의 `한국 인터넷`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해진-김범수, 꿈을 합치다=합병이 이뤄진 2000년 당시 네이버컴의 매출은 88억원에 불과했으나, 2011년 NHN 매출은 2조1474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6204억원에 달한다. 불과 10년 만에 200배가 넘게 성장했다.

NHN은 지식인, 블로그, 카페 등 커뮤니티 서비스와 결합한 검색 서비스로 국내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장 쉽고 정확하게 제공했다. 고스톱, 윷놀이 등 누구나 좋아하는 게임을 온라인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한게임도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초고속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던 2000년대 초반,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즐거움을 가장 적절히 제공한 NHN의 성공 신화가 시작된 순간이다. NHN은 야후와 라이코스 등 외국계 인터넷 기업이 각축하던 한국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았고, 한국은 아직까지 구글이 장악하지 못 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과 한게임 창업자 김범수는 서울대 86학번 동기이자 1992년 삼성SDS 입사 동기였다. 이해진 당시 네이버컴 사장(현 NHN 이사회 의장)은 검색 기술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를 계속하다 1997년 사내 벤처 1호 `네이버포트`를 설립했다. 1999년 삼성SDS에서 분사해 5억원의 자본금으로 네이버컴을 설립했고, 곧바로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최고의 검색 기술로 한국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범수 당시 한게임 사장(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삼성SDS에서 운영하던 PC통신 서비스 `유니텔`에서 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하며 인터넷에 눈을 떴다. 그는 1998년 사표를 던지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PC방 운영으로 호구지책을 하며 게임 개발에 집중, 1999년 12월 무료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다. 온라인 고스톱 바둑 등 한게임의 대명사가 된 캐주얼 게임들이 이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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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진 당시 네이버 창업자와 김범수 한게임 창업자가 두 회사의 합병을 발표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2000년 초반은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때다. 눈먼 돈이 코스닥 시장에 몰려들었고, 벤처 기업에 대한 묻지 마 투자가 성행했다. 네이버와 한게임도 당시 인터넷 사용자 증가와 벤처 투자 유치 등으로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안정적 서비스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찾아내기 위한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네이버는 검색 기술을 인정받아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아직 뚜렷한 수익 모델은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인터넷 산업 최고의 수익 모델인 검색 광고가 아직 등장하기 전이다. 야후, 다음 등 막강한 선두 주자에 가려진 신생 4위 업체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한게임은 다소 다른 상황이었지만, 고민은 마찬가지였다. 한게임은 오픈 3개월 만에 100만 회원을 모았고, 9개월 만에 페이지뷰 기준 세계 게임 사이트 1위에 올랐다. 회원은 계속 증가해 2000년이 가기 전에 이미 1000만 회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장세를 뒷받침할 시스템은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자칫 대형 서비스 장애로 이어지고 사용자들이 순식간에 떠날 위험도 상존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진 사장과 김범수 사장은 자연스럽게 인수합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학교와 직장 인연으로 창업 후에도 자주 만나 인터넷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다. 두 사람을 묶은 것은 공통의 위기의식이었다. 그리고 게임과 인터넷의 결합이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었다.

사실 당시 네이버는 코스닥 대장 새롬기술과 합병을 진행 중이었다. 여기에 한게임도 합류하자는 그림을 제시했지만, 새롬기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새롬기술이 빠지고, 네이버와 한게임 합병이 결정됐다. 2000년 4월이었다. 새롬기술과 합병을 통한 자금 확보와 인지도 제고를 포기하고 신생 벤처 기업끼리 손을 잡는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NHN 한국 인터넷 지존 자리에 올랐다=이 모험은 성공했다. 네이버의 검색과 한게임의 게임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NHN을 국내 1위 인터넷 기업으로 키웠다. 한게임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네이버에 유입됐고, 네이버는 늘어난 사용자층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서비스를 꾸밀 수 있었다. 강력한 사용자 기반은 검색 광고 사업의 핵심 자산이 됐다. 네이버의 트래픽은 다시 한게임으로 흘러갔다. 네이버가 흔들릴 때엔 한게임이, 한게임이 어려울 때엔 네이버가 회사의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네이버는 검색을 장악해 한국의 온라인 지식 생태계를 독점하며 콘텐츠의 재생산 구조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게임은 고스톱 포커 게임에서 벌어지는 사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범수 사장은 이후 NHN을 떠나 모바일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국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만든 카카오를 설립한 것. NHN이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앞세워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휩쓸면서 유선 웹 시대 최강자를 함께 만든 두 사람은 이제 모바일 패권을 놓고 진정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 김범수 한게임 사장(현 카카오 이사회 의장)

“한게임이 회원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며 승승장구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애가 타 들어 가고 있었죠.”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회상하는 2000년 초반 한게임이다.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해 절박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화려한 성공 뒤에 거대한 위기가 숨어 있는 형국이었다.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여전히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하던 이해진 네이버 대표의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삼성SDS 입사 동기였던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인터넷 사업에 대한 꿈을 나누던 사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수합병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김 의장은 회상한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지만, 합병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네이버는 당시 거대 브랜드 새롬기술과 합병을 발표한 상태였다. 한게임도 투자 제의를 받은 상태였고, 더 나은 입지의 포털과 결합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의장은 “이 의장과 나는 게임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커뮤니티와 네이버의 검색 기술의 결합이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최고의 조건을 뿌리치고 네이버와 한게임의 모험에 베팅한 이유였다.

직원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인터넷보다 게임이 더 가능성 있다”며 반발했다. 김 의장은 “사업을 하며 직원들에게 `CEO의 의지`를 앞세워 신뢰를 호소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한 번이 이때”라며 “디지털 시대에는 0과 1만 존재할 뿐이며 인터넷 업계에선 넘버원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이 의장과의 신뢰도 더 깊어졌다. 최고경영자 사이의 믿음은 이질적인 두 조직의 융화와 화합에도 도움이 됐다. 두 사람은 3년 5개월간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하며 NHN을, 나아가 국내 인터넷의 미개척지를 열어간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결과적으로 네이버와 한게임의 모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두 사람의 신뢰 외에 적절한 서비스와 시장 전략이 주효한 것도 큰 원인이다. 물론 김 의장은 “당시 초고속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며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고 즐거움을 누리려는 수요가 폭발한 시대적 상황의 도움이 컸다”면서 겸손한 자기 진단도 내렸다. 환경과 전략, 사람과 기술의 시너지가 만나 역사를 만든 셈이다.

김 의장은 “한게임과 네이버 합병은 국내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 인수합병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며 “해외 유수 비즈니스 스쿨에서도 사례를 공부하기 위해 찾아오는 등 세계적 성공 모델로 검증받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유선 웹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성공 사례를 함께 만든 두 사람은 이제 모바일 시대를 맞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김 의장은 카카오톡으로, 이 의장은 라인으로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공략하며 모바일 시대의 NHN 건설에 나섰다. 두 사람의 선의의 경쟁이 또 한 번의 역사를 창조할 지 주목된다.



[표] NHN 매출 추이 (단위: 원)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