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방치된 전기차

Photo Image

제주도에는 전기자동차 195대와 충전기 343기가 설치돼 있다. 단위면적 기준으로 볼 때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글로벌 기업들이 내년 하반기에 잇따라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관련 시장이 열릴 태세라 제주의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는 시장을 준비하는 데 테스트베드로 적합하다.

전기차가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를 고려할 때 제주도는 1시간 전후의 차량 운행이 가능하다. 이미 곳곳에 차량 충전기가 설치됐다. 여기에 제주는 렌터카와 택시가 1만6000대씩 운영될 정도로 소유 개념보다 세컨드 차량 개념의 교통문화가 자리 잡아 사업 접근성도 뛰어나다. 전기 충·방전 운행이나 과금 서비스 등 시장 검증이 더 필요한 전기차 시장의 요소도 이미 갖췄다.

하지만 제주도의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는 산업 경쟁력 강화에 활용될 수 있는데도 그저 방치됐다.

지난해 제주를 찾았을 때 비 내리는 날씨에도 전기차 충전기가 빗물에 노출된 채 녹이 슨 상태로 방치된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최근 방문했을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 세금으로 일반 내연차량 가격의 배가 넘는 전기차와 설비를 구입해놓고도 관리나 활용도는 실망스러웠다.

제주도 내 시도 자치단체는 자신들이 소유한 전기차가 고가인 탓에 차량사고나 방전사고가 났을 때 책임소재가 발생할 것에 부담을 느끼고 사용을 회피한다고 제주 관계자는 말한다. 그래서 차량을 주차장에 세워만 둔다는 것이다.

내년 5월이면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사업이 종료하면서 사업자는 철수하고 수많은 충전 인프라는 고스란히 남게 된다.

다음주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종료되면 행사에 사용됐던 전기차 100대는 읍·면·동사무에 배정된다. 또다시 방치 차량이 늘어난다.

제주도는 태양광·풍력 발전 사업이 한창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직접 연동시킬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관광지로 만들 수도 있다.

제주도는 관련 산업계와 협력해 카셰어링이나 렌터카, 택시 사업을 해서라도 지금의 소중한 자원을 활용해 국내 관련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박태준 그린데일리 gaius@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