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특집2-스타트업]영국 테크시티 "고기잡는 법을 가르친다"

지난 6월 말 테크시티 투자기구(TCIO)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런던 `해크니 하우스(Hackney House)`를 찾았다. 쉽게 도착했지만 건물 앞에서 10여분을 헤맸다. 전화를 하자 만나기로 한 테드 리지웨이 와트 TCIO 전문위원이 마중을 나와 “이곳이 해크니 하우스”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랍다. 철망과 천막으로 뒤덮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내부는 힙합 클럽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와트 위원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이 지역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창간 30주년 특집2-스타트업]영국 테크시티 "고기잡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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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시티맵닷컴이 제공하는 지도를 보면 테크시티 기업들이 얼마나 활발한 네트워킹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테크시티에 꽉 들어찬 1250여개 스타트업이 트위터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그래픽으로 나타냈다.<사진=테크시티맵닷컴>
[창간 30주년 특집2-스타트업]영국 테크시티 "고기잡는 법을 가르친다"

◇영국의 미래, `테크시티`

런던에 가면 테크시티를 만날 수 없다. `테크시티(Tech City)`는 영국 런던 동부지역 올드 스트리트와 올림픽 주경기장 일대 IT·미디어 기업이 밀집해있는 곳을 통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중심가 로터리 이름을 따 `실리콘 라운드어바웃(Silicon Roundabout)`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로 치면 시청에서 동대문 정도로 금융가가 몰린 시내 중심가와 매우 가깝다.

테크시티는 자발적으로 생겨난 곳이다. 2000년대 초반 지가가 싼 이곳에 둥지를 트는 스타트업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8년 15곳 정도이던 것이 2010년 200여개로 불었다. 정부가 주목한 것도 이 때부터다.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 2010년 11월 이곳에 실리콘밸리를 표방한 테크시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테크시티 관리를 전담하는 TCIO를 신설하고 지원을 시작하자 입주기업이 1년 만에 1000개나 늘었다. 현재 글로벌 IT 기업 외에도 1250개의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다.

테크시티는 영국의 꿈이 담긴 곳이다.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이를 보완할 새로운 산업이 필요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업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긴축 압력에 직면한 정부는 경기를 부양할 `실탄`이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13년만에 집권한 보수당은 친서민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이 때 눈에 들어온 것이 테크시티에서 꿈틀대던 IT산업이었다. 마침 제2 IT부흥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동런던 지역이라는 점도 적격이었다.

카메론 총리는 테크시티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벤처 기업이 혁신을 통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세상이다. 세상이 바뀌었다”면서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가 있는 테크시티야말로 경제성장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고기잡는 법을 알려 준다”

테크시티에서 놀란 점은 최첨단 IT단지라는 이미지와 달리 건물이 무척 투박하고 낡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공장이나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길거리엔 할렘가처럼 그래피티가 그려진 벽이 가득했고, 컨테이너를 개조해 옷 장사를 하는 곳도 보였다. 와트 위원은 “동런던은 이민자가 주로 살던 곳”이라며 “토지 가격이 싸 60여년 전부터 각국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처럼 오래된 건물 안에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점이다. 길을 걷던 와트 위원이 “이 골목에서 구글 건물을 찾아보라”고 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 세련된 인테리어를 확인하기 전까지 그것이 구글 캠퍼스 건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테크시티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인 마인드 캔디와 USTWO가 입주한 건물은 예전에 차(茶) 창고였다.

여기에 다양한 대학교와 수많은 펍이 더해지면서 테크시티만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가 완성된다. 와트 위원은 “실리콘밸리와 테크시티 차이점은 이곳 사람들이 형식적인 걸 싫어해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일 끝나고 1분 거리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아이디어 교류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를 주선해주는 `실리콘 드링크 어바웃`이란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테크시티의 독특한 스타트업 육성 정책도 이런 환경에서 나온다. 바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기`다. 테크시티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정부가 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다만 투자자와 창업자를 서로 연결해줄 뿐이다. 나머지는 스타트업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는 TCIO 예산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간 예산이 210만파운드(약 37억원)인데, 이 가운데 39%인 83만파운드(약 15억원)만 스타트업 지원에 쓰이고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사용된다.

테크시티맵닷컴이 제공하는 지도를 보면 테크시티 기업이 얼마나 활발한 네트워킹을 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올드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250여개의 스타트업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이들이 트위터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오간 대화 수만 340만건에 이른다.

TCIO는 지난해 53만파운드를 들여 30여건의 크고 작은 스타트업 행사를 개최해 네트워크 형성 기회를 주기도 한다. 세계에서 200여개 기업 및 벤처투자업체가 참여한 `기업가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USTWO의 알렉산더 스벤슨은 “열정과 경험을 갖춘 회사가 근처에 많이 있다”면서 “자주 만나 아이디어를 나눈다”고 말했다.

◇유럽 IT수도는 `런던`

와트 위원 명함에는 `디지털 캐피털 오브 유럽`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테크시티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 꿈은 어느 새 현실이 되었다. 2004년 설립된 테크시티 초창기 멤버 `마인드 캔디`는 어린이용 스토리와 게임, 음악 등을 게발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테크시티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평을 듣는다.

2007년 어린이용 온라인 게임 `모시 몬스터(Moshi Monster)`를 개발하면서 대박을 냈다. 현재 세계 65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지난 5월 소니 뮤직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내는데 성공했다. 뛰어난 창업환경을 갖추고 협력사들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IT기업과 벤처투자사가 테크시티로 몰려들고 있다. 6월에는 실리콘밸리은행이 200억달러 자산을 갖춘 런던 지점을 열었다. 이 은행은 IT 기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한다.

연구개발과 인력양성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속속 들어서면서 테크시티는 장기적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구글이 3월 `구글 캠퍼스`라는 스타트업 지원기관을 설립했고, 지난 달에는 페이스북이 기술개발연구소를 열었다. 아마존은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개발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와트 전문위원은 “정부가 돈만 투자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스타트업은 지원하되 통제를 하지 않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표. 테크시티 입주 스타트업 수 추이

자료: TCIO

표. TCIO 연간 예산 및 분야별 지출 비중

자료: TCIO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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