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반도체 장비업계에 빅뉴스가 터졌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과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가 네덜란드 노광기(리소그래피) 업체 ASML에 지분 참여와 함께 450㎜ 웨이퍼용 극자외선(EUV)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투자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450㎜ 웨이퍼 전환 일정표를 가시화했고, 소자와 장비업체의 오랜 줄다리기가 끝나고 새 역할 분담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다.
단위 소자 생산 비용을 줄여 소자업체 이윤을 확대하는 웨이퍼 대구경화는 반도체 장비업체의 대규모 장비 개발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장비업체의 대구경화 투자는 시장을 줄이는 문제가 있다. 한 개의 대구경화 팹이 여러 개의 작은 팹을 대체할 수 있고, 대구경화로 늘어난 팹 건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자업체 증가로 장비 판매가 줄어들게 된다.
450㎜ 웨이퍼 전환도 현재 관련 컨소시엄(G450C)에 가입한 소자업체가 인텔·삼성전자·TSMC·IBM·글로벌파운드리 5곳뿐이다. 이런 탓에 장비업체가 대구경화 전환에 거부감을 보인 것이 450㎜ 전환의 가장 큰 장애 요소다.
타개 방안은 간단하다. 소자업체가 대구경화로 얻는 이득을 장비업체와 공유하는 것이다. 장비 개발 자금을 내놓든지, 장비 구매 가격을 대폭 인상해 투자비 회수를 보장하는 것이다. 인텔이 450㎜ EUV 개발 프로그램에 10억달러(약 1조원)를 투자한다는 것은 이 같은 장비업계 압박에 대한 응답이다. 인텔은 450㎜ 전환 계획의 진정성을 전 업계에 과시해 비관적이던 여론을 일거에 전환하고 2015년 파일럿 라인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인텔은 장비 연구개발 투자에서 어떤 `보상`을 얻을까. 인텔은 자사 자금으로 개발한 장비를 다른 소자업체가 대가 없이 이익을 공유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해답은 인텔이 ASML과의 협상에서 보여준 장비업체 지분 참여다. 앞으로는 소자업체가 장비업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지분에 참여하는 것이 새 산업 트렌드가 될 것이다.
반면에 국내 소자업체는 450㎜ 대구경화에 적극적이지 않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미세화로 경쟁력 유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국내 소자업체는 대구경화보다 300㎜ EUV에 더 관심이 많다. 최근 급성장 중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주력 제품과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300㎜ 팹의 감가상각을 고려할 때 450㎜ 전환에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적다.
문제는 국내 장비기업이 소자업체 위상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점이다. 우리 장비업체는 국내 특정 소자업체와 수직계열 관계고 수출 비중이 낮다. 따라서 국내 소자업체가 집중 추진하지 않는 한 장비기업이 450㎜ 전환에 적극적일 수 없다. G450C 등의 컨소시엄에 참여하려는 노력도 세계적 장비기업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정보 확보에서도 소외된다.
이제 450㎜ 전환 일정이 가시화했다. 인텔이 보인 투자 진정성으로 볼 때 2015년에는 450㎜ 장비시장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었다. 450㎜ 장비 개발을 조속히 시작해야 일정에 맞게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3∼5개 선진 소자업체만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협소한 450㎜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차지할 여지는 매우 작다. 유진테크, PSK 등의 기업이 G450C에 참여해 450㎜ 개발에 먼저 나선 것은 성공 여부를 떠나 용기 있고 적절한 행보다. 국내 소자 및 장비 업체의 도전적이고 대담한 행보가 필요하다.
최리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반도체공정·장비 PD Rino.choi@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