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 마케팅본부 B차장. 오늘도 모교인 C대학으로 출근한다. 벌써 보름째다. 대학본부 보직교수로 있는 은사 D교수를 만나 사정한다. “교수님, 저 좀 한 번 살려주세요.”
2학기 개강을 앞 둔 대학가에 은행권의 `캠퍼스 구애`가 뜨겁다. 각 시중은행들은 학내 지점 개설은 물론이고 기업자금관리서비스(CMS) 구축, 궁극적으로는 주거래은행 체결까지 노린다.
특히 부속병원을 끼고 있는 서울시내 종합대의 경우, 연간 금융거래액이 수조원에 달해 웬만한 중견기업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여기에 사회진출을 코앞에 둔 학생들을 일거에 잠재 고객으로 확보 가능해, 대학은 은행에게 있어 놓칠 수 없는 마케팅 타깃이다.
IBK기업은행은 요즘 한창 모 대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은행의 장점인 CMS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세부 사항에 대한 조율은 끝난 상황”이라며 “다만, 막판 줄다리기가 진행 중인 건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줄다리기란 `발전기금`을 말한다. 자신들의 몸값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각 대학들은 은행 유치시 적잖은 기금 출연을 요구한다. 서울 소재 사립대는 150억~200억원, 많게는 300억원까지 부른 대학도 있다는 게 은행가의 설명이다.
기업은행 역시 이 문제로 고심 중이나, 국책은행이라는 한계와 타 대학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점포망을 자랑하지만 대학내 영업 지점과 출장소는 신한·우리 등 경쟁 은행 대비 턱없이 적은 KB국민은행도 최근 캠퍼스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부터 대학가 근처에 `락스타(樂STAR)` 지점을 속속 개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국민은행은 최근 원광대 의대, 부산대 치대 등 12개 대학과 업무협약을 신규 체결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요즘 은행권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누가 `서울대학교`를 유치해오느냐다. 서울대의 특성상 은행권 대학 마케팅의 상징적 `랜드마크`가 될 수 있어서다. 현재 서울대는 농협이 전통의 터줏대감으로 수십년째 틀어쥐고 있다. 최근 한 은행이 기부금 50억원을 내고 현금지급기(ATM) 몇 대를 관악캠퍼스에 들여놓았다가 농협의 강력 항의에 결국 자진 철수해가는 촌극이 벌어졌을 정도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대학들도 약아져 복수의 금융기관과 주거래 협약을 맺는 추세”라며 “서울대 역시 농협 시대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해, 은행가의 캠퍼스 전운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