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후보자를 중심으로 새 정부 짜기 구상에 몰두하고 있을 시기다. 30여년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종사하다 물러선 사람으로서 몇 가지 건의를 하고자 한다. 결론은 정부 예산 가운데 전 부처에 배분될 ICT융합산업 관련 예산 배정권을 한 기관에 맡기자는 것이다.
정부 업무 중 ICT시스템이 직간접적으로 융합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을 찾기 힘들다. 시스템 차원에서 구성을 보면, 민원인에 해당하는 이용자와 단말, 그리고 산재해 있는 다수의 단말을 연결하는 통신망, 수집된 정보를 처리·보관하는 서버로 대별된다. 이 구조는 각 부처가 수행하는 업무에 특화된 기능을 빼면 매우 유사해서 상당 부분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재이용하고 다양한 표준화 이점을 확보하기가 쉽다.
그러나 지금은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배정받고 나면 사업 시행은 부처가 거의 독립적으로 추진한다. 각 부처는 유사 시스템을 중복 설치하고, 먼저 설치한 시스템 노하우가 전수되지 못해 표준화되지 못한 각양각색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만다. 더욱이 제한된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는 담당자는 재벌계 대기업이 제공하는 편향된 정보에 현혹돼 낙후한 기술을 정하고 마는 사례를 종종 봐왔다. 선진국에서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된 기술이라는 논리에 끌려 장기적·체계적 관점에서 시스템을 선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를 설치하고 IT특별보좌관을 두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온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정책 제안·조정·자문 수준의 기능은 수십년간 굳어진 부처 간 이기주의를 타파하기엔 역부족이다.
국회 심의를 거쳐 예산이 확정되면 ICT융합시스템 연구개발(R&D) 사업용 예산은 독립기관이 관리권을 독점하게 해야 한다. 부처에 예산을 배정할 때 이 기관 관할 아래 있는 R&D 관리를 위한 전문가 그룹 심의를 거치고, 기구 지침에 따르지 않으면 예산 배정 취소와 삭감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미국 예산관리국(OMB)의 국가R&D사업 관리체계와 유사하지만, 이 기구가 청와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재정부 등 어디에 있든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은 다르다. 정부조직 개편은 최소화하되 우리 환경에 적합한 조직에 기구를 신설해 예산 배정권을 쥔 독임 기구로 두자는 뜻이다.
정부조직 개편의 어려움을 역대 정부에서 여러 번 봤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도 지금처럼 각 부처가 독자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권 없는 위원회가 조정하는 형태를 답습한다면 세계 수준인 우리나라 ICT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마지막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강철희 한국통신학회 명예회장 chkang@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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