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미래다]<1부>멘토가필요하다 (13)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

“인생 2막, 뭐 하실 생각이세요?” 기대 수명이 늘어나 은퇴 후 또다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여기 독특한 해답을 준 사람이 있다.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은 하나로미디어 회장으로 재직하며 국내 IPTV 시장 문을 연 인물. 퇴임 후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끝에 스타트업CEO의 멘토가 돼 주기로 했다.

2008년 퇴임 직후 젊은 벤처인들을 조직해 포럼을 만들었다. 국내에 애플 아이폰이 상륙하기 2년 전이다. 황무지 같던 창업 시장에 물꼬를 튼 것. 2011년 이후 창업 바람이 불자 고벤처포럼에는 창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터진 봇물처럼 흘러들어오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 문화를 이끌어 온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을 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부장이 만났다.

-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부장=2008년이면 정부에서도 창업 붐을 조성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던 때다. 엔젤투자자금도 없고 이렇다할 스타트업 생태계가 없던 시절 고벤처포럼을 만들었다. 포럼을 시작한 이유는.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젊은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서 시작했다. 지금 같은 모습을 그린 건 전혀 아니다. 개인적으로 젊은이들 불러서 저녁 사주는 모임이었다. 회사가 인수되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있고 그래서 딱히 할 것도 없고…. 그러면 결국 친구들이랑 여행이나 다니고 골프나 치고 그렇게 놀아야 하는데 남은 세월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70·80세까지 살면 모르겠는데 40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니 세상 트렌드를 놓치지 말고 살자 싶었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병준=사람은 어떻게 모았는지.

▲고영하=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이랑 놀아 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나눠 주자고 마음 먹었다. 나름대로 창업도 해보고 회사를 일궈 낸 경험이 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그들의 에너지를 받으면 서로가 좋은 것이다. 당시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에서 `리트머스 프로그램`이라는 창업 지원 사업을 했는데 그 사업에 참여하던 창업자 중 한 명과 인연이 있어서 “밥 한 끼 먹자”하고 불렀다.

리트머스 프로그램 참여자 7명이랑 제일 처음 만났다. 그 친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주변 다른 친구들도 데려오고 그게 20명, 30명이 되고 50명, 100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한 번에 적게는 200명, 많게는 300명이 오는 큰 규모 행사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한컴 대강당에서 하다가 전자신문 인터넷방송국, 마이크로소프트 세미나실, 지금 KT 광화문 올레스퀘어까지 장소도 점점 키워 왔다.

-강병준=고벤처포럼은 어떤 행사인지 궁금하다.

▲고영하=강연은 두 개다. 이번 달은 김승남 전 잡코리아 회장이 먼저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발표한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빅데이터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참석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10초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다. 강연만 하면 누가 모였는지 잘 모르니까 서로 소개를 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이 되게끔 했다. 창업자,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기자, 정부기관 관계자 등 다양하다.

그 후 20분 쉬면서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에는 스타트업 창업자가 궁금해 하는 최신 실리콘밸리 동향, 뜨는 애플리케이션(앱), 정부 지원이나 엔젤투자 정보를 모아서 소개한다. 이게 끝나면 스타트업 5개 회사가 나와서 사업 소개를 하고 엔젤투자자들의 조언을 듣는다. 행사에 출연하는 강연자는 내가 직접 섭외하고 나머지 강연 준비는 자원봉사자들이 한다. 스타트업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강병준=고벤처포럼도 벌써 5년째고 초반하고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진 게 느껴진다. 어떤 점이 변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고영하=달라졌다. 정부 창업지원정책도 많이 만들어졌고 투자환경도 훨씬 좋아졌다. 창업 열기도 뜨겁다. 변화의 시기에 기회가 있다고 하지 않나. 지금이 트렌드가 변화하는 시기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대중화 되면서 큰 변화를 몰고 왔고 그 때 기회를 잡은 미국 구글, 한국 NHN·넥슨 같은 회사가 이렇게 성장했다. 지금은 모바일 전환기다. 인터넷 시대에는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많아야 하루 몇 시간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에 24시간 접속하는 시대다.

사업 기회가 10배는 크다고 본다. 오프라인에서 하던 일들의 20%가 인터넷에서 이뤄졌다면 모바일 시대에는 50% 이상이 옮겨올 것이라고 본다. 이런 환경이 2~3년은 더 갈 거라고 본다. 아직은 스마트폰이 완전히 우리 삶에 뿌리를 내린 건 아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스마트폰이 보급되는 시기가 약 3년 정도 후일 것 같다. 그 때까지는 계속 사업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강병준=특히 창업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있는지.

▲고영하=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 이건 혁신에서 나오는 건데 대기업에서는 잘 안 일어난다. 대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외부 혁신 역량을 흡수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1년에 인수합병(M&A)을 몇 건씩 한다.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간 이유는 창업이 안 일어나서라고 한다. 대기업이 인수할 회사가 없고, 그러니까 소니나 도요타가 노쇠해 간다. 창업 문화 활성화 시켜서 스타트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청년 실업문제도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대기업들이 고용 없는 성장을 해 온 게 몇 년째다. 결국 똑똑한 사람이 창업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게 유일한 길이다.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수만개 만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제일 시급한 문제라고 봤다.

-강병준=창업자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창업 문화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느끼는지.

▲고영하=가장 걸림돌은 부모다. 불안하니까 말린다. 선순환 구조로 바꾸려면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독일의 예를 들면 대학 진학률이 40%밖에 안 된다. 60% 학생을 위해 직업 교육을 하고 어릴 때부터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다.

미국 역시 유치원 때부터 비즈니스 게임을 가르친다. 기업가 정신 교육을 하고 기업가에 대한 위인전을 읽으면서 꿈을 키운다. 장래 희망에 창업이 들어간다. 우리는 송두리째 빠져 있다. 대학 졸업하면 배운 게 없으니 막상 창업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직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창업이 정보기술(IT) 분야에만 국한해야 하는 건 아니다. 떡볶이 집도 할 수 있고 미장원, 옷가게도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수능만 가르친다.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가르치니까 아이들이 성공 방정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초기 종잣돈(시드머니) 투자도 미흡하다. 미국에는 엔젤 투자자만 30만명이 있고, 1년에 20조~30조가 스타트업에 투자된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은 3만명은 돼야 하는데 약 300명밖에 안 된다. 돈줄이 막혀서 정부 자금에 의존하는데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통한 것도 다 빚이다. 작년에 정부에서 시작한 엔젤매칭펀드 같은 제도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

정부에 창업 전문가가 없는 것도 문제다. 창업 문화에 대한 세미나를 많이 해야 한다. 중소기업청 공무원들만 뛴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교육 과정에도 직업·창업 교육이 들어가야 한다. 개별 부처 업무 영역을 뛰어 넘어 국가 어젠다로 총 지휘하는 곳이 필요하다.

-강병준=한국에는 돈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엔젤 투자에 관심 없는 이유가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고영하=초기 투자는 불확실성 크고 수익 내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좋은 기업 선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잘 하는 엔젤투자자가 있어서 성공 사례 만들고 벤치마킹 한다. 50년간 만들어 온 문화다. 우리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끈기 있게 기다릴 필요도 있다. 만약 여유 자금 1억을 1000만원씩 나눠 초기 기업에 투자해 지분 1%만 가져와도 10년 후에 그 중 한 개 회사만 시가 총액 1000억 회사로 증시 상장(IPO)에 성공하면 10억이 생긴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최근에는 M&A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이 좋은 기술 있으면 그걸 베끼거나 우수한 인재들을 빼 갔는데 스스로 자기 발등 찍는 일이다. 혁신 역량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잘 잡아서 창업 기업 기술이나 직원 빼가기를 못하게 막으면 혁신 역량 보강될 것이다. 2~3년 지나면 NHN·다음 같은 회사가 나올거라고 본다.

-강병준=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서 조언을 구한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지.

▲고영하=제일 중요한 게 팀을 잘 짜는 것이다. 그게 사업 성공의 지름길이다. 사업을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어쨌든 팀을 짜는 주체가 사람들을 설득해서 영입해야 한다. 설득 과정이 사업 기획 과정이다. 누구나 쉽게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설득이 됐다면 좋은 팀이 만들어질 것이다. 팀을 짜면 창업비용도 줄어든다. 다섯 명이 공동 창업하면 나눠 내면 되고 토론을 통해 사업 완성도도 높아진다. 아이템은 엎을 수 있지만 팀 역량이 있어야 사업이 돌아간다.

-강병준=스타트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있다면.

▲고영하=창업 교육이 제대로 안 되니까 초기 기업에서 배워야 할 게 많다. 고벤처포럼 안에 이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심민규 회계사가 무료 상담 해주고 장동규 변리사가 기술 기업에 무료로 자문 한다. 회계, 법인 설립, 투자 관련 사항을 가르쳐주고 있다. 투자를 받고자 하는 회사에는 투자자도 소개해 준다. 전체 네트워킹 인원으로 따지면 1000명 넘는 사람들이 고벤처포럼을 형성하고 있다. 비슷한 업종끼리는 묶어 주고 협력할 게 있으면 소개시켜준다.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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