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IT강국 코리아는 지금 후진적 종교 논쟁 중

100여년 만의 일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다시 맞섰다. 좀 더 적확하게 표현하면 미국 테네시주의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법`이 통과된 지 87년 만이다. 다윈이 탄생한 지 200여년 만의 일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헌법상 국교를 용인하지 않는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이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술렁이고 있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이하 교진추)가 주역(?)이다. 진화론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종이 아니므로 교과서에서 삭제해 달라는 청원을 공식 접수했다.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진화론의 사례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1차 청원으로 이미 돌파구를 찾았다. 미 아칸소주에서 1981년 있었던 `제2의 스콥스 재판`과 흡사하다. 지난 3월 2차 청원에서는 아예 `말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니 진화 관련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교진추 주변에 따르면 앞으로 `화학적 진화는 생명기원과 무관하다`든지, `생물계통수가 허구다`는 청원을 계속해서 낼 계획이다.

도대체 과학기술 강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서 어찌된 일일까. 교진추는 `진화 자체가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거나 `진화란 단원 자체가 교과서에서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단체다. 배경을 의심해볼 만하다. 교진추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성향이다. 대다수 종교인들조차 수긍하지 않는 창조론을 과학으로 포장한다. 진화론의 배격은 곧 창조론의 숭배로 이어진다. 기독교와 천주교의 본향인 유럽에서도 창조론은 종교의 교리일 뿐이지 과학은 아니다.

87년 전 미국에서는 창조론자들의 판정패로 결론이 났다. 대부분의 미국 주에서도 이들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선 진화론이 대세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논쟁 자체가 목적인 듯하다. 논쟁에 말려들지 말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후진적 논쟁이 재발된 것 자체가 뉴스거리다. 진화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논리로 대안을 찾는 구조다.

창조론에 일반인의 관심도 끌 수 있다. 관심을 돌리는 데는 논쟁만큼 자연스러운 무기도 없다. 시기도 절묘하다. 대선을 앞둔 시기다. `장로` 대통령의 임기 안에 논쟁을 끌어들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창조론의 또 다른 이름표인 지적설계론도 활용한다.

미국은 어떤가. 버틀러법 이후 당시 많은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이 사라졌고 심지어는 과학 수업 자체가 줄었다. 결국 1957년에는 소련이 `동반자`라고 명명한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해 미국 전역이 충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주말, 마침내 한국생물과학협회가 나섰다. `교진추의 청원을 기각해 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무대응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미 논쟁 구도에 말려들었다. 불교계도 한발 걸쳤다. 특정 종교 관점에서의 학설을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역사의 죄인, 양심의 죄인이라는 공식적 입장도 내놨다. `네이처`는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굴복했다`고 썼다. 그동안 진화론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심의위원들이 `시조새`와 `말`의 진화 청원을 받아들인 데 따른 결과다.

진화론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 가설이 모든 걸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진화론이 완벽한 학문이 아닌 것은 맞지만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론이 옳다는 이분법적 논쟁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도 증명됐다.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적 논쟁은 과학기술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