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관 연구개발(R&D) 성공률이 95%에 육박합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최근 공식적인 자리에서 청중에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박수를 보내며 성과를 칭찬했다. 공무원으로서 그의 성과와 관리 역량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R&D 성공률이 높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이 크지 않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 R&D 자금 집행은 투명해졌지만 지나치게 안정 지향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업이 투입한 연구개발비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 R&D 자금을 활용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업이 연구개발을 거의 완료한 기술로 정부 R&D 프로젝트에 지원한다는 얘기다. 정부 실무자들도 일부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은 더 이상은 곤란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모방하는 데 집중했다. 고속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간 길을 빨리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지금과 같은 R&D 지원 시스템이 정착한 이유일 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선진국을 따라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슷한 반열에 올랐다.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산업을 주도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TV·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한다. 이제는 모방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실패 가능성이 높더라도 원천 기술 부문에 정부 R&D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R&D 평가 시스템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장려해야 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경험은 자산으로 남는다. 창의적인 인재가 날개를 펼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은 이미 냉혹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했다. 시대를 내다보기는커녕 뒤처진 정부라는 이야기를 듣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형수 전자산업부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