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86`은 2007년 도요타와 스바루가 공동 개발에 착수해 올해부터 판매를 시작하게 된 후륜구동 스포츠카다. 도요타가 컨셉트와 디자인 개발, 스바루가 설계와 생산을 맡아 `도요바루`라는 별명도 붙었다. 도요타86은 현대자동차의 `포니`를 닮은 1980년대의 도요타 해치백 `AE86`의 이름과 정신을 계승한 차다. AE86은 일본의 자동차 만화 `이니셜D`에서 주인공 소년이 운전하는 고갯길 전문 두부배달차로 등장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 차량이다. 주인공과 자동차 모두 외관이나 스펙 상으로는 결코 별 볼일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차의 뒷부분을 일부러 옆으로 미끄러뜨리는 `드리프트` 주행을 통해 유수의 경쟁자들을 꺾어나간다는 설정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형 86의 개발총책인 타다 테츠야 씨에 따르면 AE86은 출시 당시만 해도 딱히 좋은 차가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가벼운 후륜구동차라는 점 때문에 이 차를 튜닝해 즐기는 이들이 나타났고 이것이 이니셜D를 통해 재조명을 받으면서 현재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타다씨의 표현을 빌자면 “좋은 차가 되기까지 20여년이 걸린 셈”이다.
그에 비하면 새 86은 처음부터 좋은 차가 되고자 한 것 같다. 수치적인 성능 경쟁에 치중하다 보니 갈수록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스포츠카`라는 차종의 본질을 고민했고 그 결과로 대중적인 가격대와 기본기능에 충실한 스포츠카를 지향했다. 86의 2.0리터 엔진이 발휘하는 203마력의 최고출력이나 200㎞/h를 겨우 넘기는 최고속도는 요즘 기준으로 대단치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대신 86은 작고 가볍고 무게중심이 낮다. 전통적으로 손 꼽혀온 좋은 스포츠카로서의 요건들을 갖춘 것이다.
86은 속도가 빠른 차, 한계가 높은 차가 아니라 운전자와 교감하며 주행의 즐거움, 손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차를 지향했다. 도요타로서는 최초로 개발 과정에서 드리프트를 테스트한 차량이기도 하다. 드리프트는 한계점에 도달해 코스를 이탈하거나 스핀하려는 차의 거동을 제어해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가는 고난이도의 운전 기술이다. 그만큼 차와 운전자의 일체감, 소통이 중요하다.
전남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일본의 유명 레이서 다니구치 노부테루 씨가 운전하는 86에 타보았다. 연속되는 코너에서 운전대와 페달 조작만으로 자연스러운 드리프트를 이어가는 그의 운전에는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았다. 1971년생인 다니구치 씨는 첫 차로 AE86을 구입한 이래 AE86만 다섯 대를 타면서 운전기술을 연마했고 결국 서른 살에 레이서로 데뷔해 지금은 일본의 드리프트 경주와 GT경주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다. 올해 드리프트 대회에는 신형 86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는 신형 86이 “요즘 보기 드물게 운전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하는 차”라며 높게 평가했다.
운전 실력이 미천한 입장에서 보기에도 86은 조미료를 넣지 않은 채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거는 음식 같았다. 반응이 명쾌하고 조작에 따른 차의 움직임이 쉽게 파악되니 잃었던 감각기관이라도 되찾은 듯했다. “이 차라면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쯤 되면 저렴해 보이는 실내 재질이나 별다른 끌림이 없는 외형 같은 것들은 `좋은 차`라는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에는 가격 메리트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있다. 국내 출시되는 토요타 86의 가격은 스탠다드 그레이드 3,890만원(수동 변속기), 하이 그레이드 4,690만원(자동 변속기)이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