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고등학교 때까지 군것질을 해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햄버거도 못 먹어봤다. 용돈은 모두 게임기를 사고 오락실을 가는 용도로만 썼다. 고3 때도 게임을 놓지 않아 결국 재수를 하게 됐다. 재수 생활은 게임이 차단된 스파르타 기숙학원에서 했다. 게임을 안 하니 수능 점수가 100점이나 올랐고 대학 진학도 성공했다. 이 게임광 소년이 지금은 스마트폰게임 개발로 대박 행진을 하고 있는 페이즈캣 김진혁 대표다.
힘들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캠퍼스 생활은 길지 않았다.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 컴퓨터교육과에 진학했지만 그의 바램과 학교 수업은 달랐다. 22살에 대학을 관두고 바로 게임 회사에 취직했다. 한동안 게임 개발자 삶을 살았지만 불안한 삶이 결국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게임회사는 워낙 이직이 많고 불안정해요. 프로젝트에 따라 팀이 꾸려졌다 해체되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백수가 돼 있곤 했죠.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자연스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직접 만들자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더해져 창업을 작심하게 됐습니다.”
수입이 끊기지 않는 안정적 직장. 이 지극히 유부남적인 이유가 김 대표가 창업에 뛰어든 이유다. 결혼식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을 정도로 그에겐 중요했다.
“2007년, 결혼을 앞두고 프로젝트가 중단돼 잠시 백수가 됐어요. 결혼할 때는 번듯한 직장이 있는 행복한 모습이었으면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결혼과 이직을 준비하는 상황이 조금 힘들더군요.”
다행히 결혼식 후 곧 다른 회사에 취직했지만 2년 후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직-백수-구직이란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단순히 잦은 이직에 지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이 세상이 변했다.
“그 전과 달리 2009년 말에는 스마트폰과 앱스토어가 존재했습니다. 개인이 얼마든지 게임을 개발해 유통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거죠. 4개월 정도만 취업 안하고 게임 만들겠다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창업의 길에 접어들었죠.”
4개월을 약속한 김 대표가 6개월 만에 만들어 낸 스마트폰 게임 `코스트디펜스`는 그에게 대박을 안겨줬다. 북미 지역 앱 다운로드 3위에 오르며 금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김 대표를 포함해 4명이 시작한 페이즈캣은 2010년 말, 첫 게임 `팔라독`을 빅히트 시키며 단숨에 주목받은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팔라독은 론칭 18개월이 지난 현재 유료 다운로드 600만건을 넘어섰다.
페이즈캣은 벤처지만 김 대표는 결코 모험에 모든 걸 걸지는 않는다. 성공할 수 있는 게임 개발이 최우선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게임 개발을 원칙으로 합니다. 새로운 것을 고민하지만 절대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죠. 현재 페이즈캣 직원이 22명, 그 밑에 딸린 식구들만 50~60명은 됩니다. 유부남적 마인드로는 무조건 성공하는 것 밖에 답이 없습니다.”
유부남의 보수성(?)과 스타트업의 혁신을 잘 버무린 김 대표의 비장하면서도 이유 있는 경영 철학이다.
◆김세중 젤리버스 대표 추천의 변(辯)=“가장 스마트하게 모바일 게임 사업을 하고 있는 대표적 스타트업기업입니다. 대표가 저만큼 미남이기도 하고요.(웃음)” 김세중 젤리버스 대표는 훈훈한 외모의 김진혁 페이즈캣 대표를 추천했다. 페이즈캣은 스마트폰 게임 `팔라독`으로 유료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표]페이즈캣 현황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