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104>욕(慾)이 충족되지 않으면 욕(辱)이 나온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욕구(need)와 욕망(desire)을 엄격히 구분한다. 허기나 갈증과 같은 결핍된 욕구는 충족될 수 있는 반면에 채워도 끝이 없는 욕망은 인간의 기본 욕구 너머의 충족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으면 허기 욕구는 충족되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갈증 욕구는 충족된다. 그런데 명품이나 새로 출시되는 제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명품이나 신제품을 구입하는 순간 충족되는 듯하지만 다른 명품이나 신제품이 출시되면 다시 구매 욕망이 잠들지 않고 꿈틀거린다. 욕망은 `제동장치 없이 질주하는 열차`와 같다.

인간의 기본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심리적 불안감이나 좌절감은 물론이고 폭력적 언행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현실적으로 욕구와 욕망을 분출시킬 통로나 수단을 찾게 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욕설이다. 욕(慾)이 충족되지 않으면 욕(辱)이 나오는 것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하룻밤 재워줄 수 없냐고 했더니 훈장이 내쫓았다. 이에 화가 난 김삿갓이 훈장을 상대로 욕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이른바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이라는 시다. 한자를 소리 내어 읽으면 차마 입에 담기 곤란한 욕설이다. 소리 나는 대로 읽어야 한자에 담긴 욕설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난다.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하룻밤 묵어가겠다는 청을 들어주지 않는 얄미운 훈장에게 의미심장한 시로 화답했지만 알고 보면 김삿갓이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욕쟁이 할머니의 욕이나 친구 사이에 허물없이 주고받는 욕은 충족되지 않은 욕구나 욕망을 욕설로 맞대응한 표현이 아니다. 이처럼 욕은 감탄과 비하, 농담과 질책, 웃음과 폭력, 응징과 훈계 등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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