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HP·델) 지고, 중국(레노버·에이서) 뜨고.`
세계 PC시장 지형이 변하고 있다. 몇 년간 선두권를 지켰던 미국계 업체들이 PC수요 감소 등으로 휘청이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중국계 업체들이 저가 전략으로 신흥 시장에 파고들었다. 조만간 레노버가 HP를 제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선두 업체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24일 HP는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순익은 지난해보다 31% 줄어든 15억9300만달러를 기록, 1분기에 이어 계속 감소하는 모양새다. 매출액 역시 지난해보다 3% 감소한 306억9300만달러로 나타났다. 원인은 정체된 PC사업 매출 때문이다. 프린터 사업은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멕 휘트먼 CEO는 PC와 프린터 사업부를 합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델 역시 이 날 주가가 18% 폭락했다. 10여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23일 내놓은 1분기 실적 순익이 9억4500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27% 감소했기 때문이다. 매출 역시 4% 감소했다. PC와 노트북 매출은 10%나 떨어졌다.
반면 레노버와 에이서 등 중국계 업체는 파죽지세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레노버는 올해 1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43.7%나 출하량을 늘렸다. 시장점유율은 1년 만에 4% 뛰었다. 순익은 59% 증가했다. 가트너 자료에서도 레노버의 성장은 두드러진다. 레노버는 전세계에서 1160만대 PC를 출하해 HP와 함께 1분기에 1000만대 이상 PC를 출하한 업체가 됐다. 마카코 기타카와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레노버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시장에서 전년과 비교해 50% 이상 성장을 기록하면서 상위 5개 PC 업체 중 가장 큰 폭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델이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서 매출을 4% 밖에 늘리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에이서 역시 중국 업체 폰더와 제휴를 맺고 방대한 유통망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대 시장이었던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한 적자를 중국에서 메우고 있는 것. 중국 내 점유율은 전년 동기 3.5% 수준에서 18%로 껑충 뛰어올랐다.
전문가들은 내년께 레노버가 HP를 제치고 세계 1위 PC업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서 리아오 푸방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을 비롯해 신흥 시장에서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최근 레노버의 시장점유율은 13.5%로 18%를 기록한 HP와 격차를 점점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스마트폰에 뭉칫돈을 투자하고 스마트패드와 스마트TV까지 사업 다각화를 통해 PC 수요 위축에 대응, 경쟁력 확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에이서 역시 연구개발(R&D) 인력을 6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고 울트라북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 중이다.
선두업체들의 대응은 무엇일까. 이들은 PC에서 수익이 크게 떨어지자 스토리지, 클라우드, 보안 등 기업형 소프트웨어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다. HP는 24일 전체 직원 8%에 해당하는 2만7000여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HP측은 “연간 30억~35억달러를 절감해 이를 클라우드, 스토리지, 보안 등 3대 핵심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델 역시 스토리지와 클라우드 부문에 집중한다. 컴펠런트, 소닉윌 등 관련 업체 인수합병(M&A)을 통해 종합 IT컨설팅 업체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세계 PC시장 점유율 (출처: IDC)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