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시간 스크린에서 눈을 떼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신세대 학생들에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보스턴대 졸업식 연설에서 슈미트 회장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끄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보며 진짜 대화를 나눠보라”고 충고했다. 스마트폰에 푹 빠져 온라인 소통만 중시하는 젊은이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는 전통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다.
지난해 해외 교육현장 취재차 남태평양 섬나라 마이크로네시아의 명문 사학 세비어(Xavier) 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1953년 개교한 세비어고는 매년 100여개 주변 섬나라에서 우수 인재가 몰려드는 4년제 남녀공학이다. 태평양이 훤히 보이는 학교 캠퍼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만든 오래된 건물이다. 전기 공급도 제한적이어서 학교는 물론이고 섬 전체에 TV가 없다. 당연히 컴퓨터와 인터넷 등 첨단 정보기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일반 휴대폰 통화도 불가능하다.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이 없어도 인재를 기르는 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세비어고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학생회실에서 치열하게 토론을 벌인다. 바다가 보이는 공간에 섬마다 특징 있는 민속집을 지어 놓고 조용히 생각하는 장소로 쓴다. 학교 도서관 벽에는 `Still & Read Up!`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조용히 생각하고 열심히 책을 읽어 사고(思考) 수준을 높여 나가자는 뜻이다. 수업 또한 교사가 일방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거나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다. 절반 이상은 학생이 직접 발표하고 토론한다.
일상적인 상황에 논리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하기,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을 지닌 사람과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세비어고가 추구하는 교육 가치다. 이런 과정을 거친 졸업생은 대부분 미국 주립대 등으로 진학한다. 대학을 나오면 국제기구에서 일하거나 고국으로 돌아와 지역 발전을 이끄는 지도자로 활동한다. 마이크로네시아 인근 지역 대통령, 국회의원, 기업 최고경자(CEO)의 절반 이상이 세비어고 출신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통하고 문제를 탐구하는 세비어고 교육 방식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실제로 컴퓨터와 휴대폰은 우리의 깊은 사고를 도와주기보다는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캘리포니아대 연구결과, 현대인은 평균 3분마다 정보기기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받는다. 정보기기에서 몇 분만 떨어져도 참지 못하는 `초미세 지루함(micro boredom)`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미국 웹 전문가 제이콥 닐슨이 232명을 대상으로 숙독(熟讀) 능력을 실험한 결과도 충격적이다. 대상자 가운데 불과 6명만이 웹 사이트 내용을 있는 그대로 차분히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익숙한 10대가 어른보다 무언가를 읽어내려가는 속도는 빠르지만 주의를 집중하는 시간은 훨씬 짧았다. 이 때문에 10대는 조금만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그냥 넘겨버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나고 컴퓨터를 부팅하면서 일을 시작한다. 학생은 컴퓨터로 숙제를 하고 인터넷에서 논다. 24시간 돌아가는 회사 서버와 휴대폰 문자함에는 한밤중에도 업무 메일이 차곡차곡 쌓인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의 총수입에서 `컴퓨터를 잠시 꺼라`는 제안이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대로 된 `생각`을 위해 가끔씩이라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끌 필요가 있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