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89>`쓰레기`와 `쓸 이야기`

쓰레기는 쓸모가 없어서 버린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쓸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쓰레기라고 해도 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바라보면 쓸모가 생기기 때문이다. 쓸모는 쓸 사람이 정한다. 쓰지 않는 사람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겐 쓸모가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지닌 쓸데 있는 물건으로 새롭게 다가올 수도 있다. 작가는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쓰레기 속에서 쓸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과 현상은 시적 호기심의 대상이다.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과 현상은 작품 구상의 재료다. 음악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일상은 경이로운 선율이 흐르는 작곡과 작사의 원천이다. 화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화폭에서 춤추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이처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세상은 경이로운 기적의 한 장면이나 그리움을 자극하는 창작의 원료로 다가온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그래서 금방 써 먹을 수 있는 실용적 가치나 도구적 기능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동안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맥가이버`. 맥가이버는 위기 상황에 처할 때 자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도구를 자유자재로 변용시켜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변용되어 쓰일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상황과 달성하려는 목적에 따라 쓸모없는 것도 쓸모 있는 것으로 바뀌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시래기`와 `우거지`도 버려진 `쓰레기`다. `시래기`는 무청 말린 것이고 `우거지`는 푸성귀나 배추의 겉 부분을 말린 것이다. 우거지나 시래기로 국을 끓여 먹으면 진한 국물 맛과 함께 무나 배추 맛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버렸지만 놔두어서 새로운 음식 재료로 탄생하는 시래기와 우거지에서 우리말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우리말에 `버려둬`나 `내버려둬`라는 말이 있다. 버렸는데 놔두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 같지만 버렸지만 놔두었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 놀라운 의미가 잠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