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 심화와 학생 자원의 수도권 쏠림으로 지역대학 이공계 대학원이 전멸 위기다.
지역 사립대는 물론이고 국공립대 대다수가 석·박사과정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재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곳도 있다.
이공계분야에 특화된 대학은 충원률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수요 부족으로 대학원 입학생 수준이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은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더 심했다. 이른바 수도권에 고급인력이 몰리고,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인력고갈에 시달리는 현상이 향후 국가 과학기술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교육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IT분야 대학원 진학생 품귀현상=대구지역 국립대 경북대는 올해 IT대학내 전기·전자·컴퓨터학부(전·전·컴학부)에 석·박사과정 180명을 모집했지만 실제 입학생은 125명(석사 82명, 박사 43명)에 불과했다. 한때 800명이 넘던 IT대학 내 전·전·컴학부 석·박사 재적생(휴학생 포함)이 현재는 407명까지 줄었다.
사립대인 영남대도 지난해 183명 정원에 160명을 모집했고, 올해 봄학기엔 모집정원 146명중 132명이 등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공계중심대학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대학원 과정을 개설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도 올해 봄학기에 120명을 모집했지만 74명만 등록했다.
광주과학기술원은 지난해 박사과정 충원률이 69.9%수준으로, 전년도(2010년) 79.4%에 비해 10%가량 줄었다. 올해도 석·박사과정 충원률은 70%~80%에 머물 전망이다. 조선대도 물리학과 등 기초과학과정의 매년 석·박사 평균 충원률은 60% 수준이다.
부산대도 올해 전기전형 공대 19개 학과의 석사 충원률이 70%에도 못미쳤다. 반면에 조선해양공학과 기계공학 등 일부 인기학과에만 지원자가 정원 이상으로 몰려 대학원내 격차도 심해지는 양상이다.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는 개교 첫해인 2009년과 2010년 대학원생 충원률이 각각 74.7와 78.2%를 나타냈지만 올해는 365명 정원에 116명이 입학해 31.8%에 그쳤다.
◇이공계 기피·수도권 집중이 원인=지방 대학은 이공계 기피현상에다 학생 자원의 수도권 쏠림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이공계 학생들이 의사나 한의사 등 인기 직종으로 전공을 바꾸려는 현상 때문이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학생 자원이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정희 경북대 IT대학장은 “지방에서 이공계 학부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BK21 등의 정부지원 예산으로 장학금 사정이 좋아진 수도권 사립대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국립대는 그나마 버틸 만 하지만 지방 사립대는 전멸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도권 중견 사립대는 BK21 사업 이후 학생들에게 줄 입학 장학금 등 각종 혜택에 대한 `실탄`이 많아지면서 지방 학생들 입장에서는 석·박사과정 수도권 유학에 대한 비용부담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지역대학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각종 규제 때문에 성적 우수자에게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국립대보다 수도권 사립대로 진학하는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지방대는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지원자 줄면서 대학원 수준도 하향세=국내 이공계분야 대학원 입학생 자원이 줄면서 석·박사과정 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대학원과정 규모가 학부보다 더 큰 포스텍은 거의 무료에 가까운 파격적인 장학금제도와 연구중심대학의 명성으로 인해 석·박사과정 충원은 문제가 없지만 우수한 학생자원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텍 관계자는 “해마다 선발한 이공계 학생 학력 수준이 낮아져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국립대는 물론이고 사립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유치전을 펴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지방서는 연중 대학원생 모집=대학들마다 석·박사 우수 자원 유치를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포스텍은 매년 서울대와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 학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원 혜택 등을 소개하는 설명회를 수차례 열고 있으며, 학생 유치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경북대도 연중내내 오픈랩(연구소 견학)을 운영하고, 대학원 설명회 등을 개최해 홍보에 나서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도 소수정예교육, 재학생 해외연수제공, 박사과정 병역특례, 기숙사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무기로 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역대학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정원에 비해 학생 자원이 줄었기 때문에 지역 대학들마다 한정된 학생들을 뺏아오는 경쟁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대학원 정원 축소와 이공계 우대 등 정부의 근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