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중소기업부 신설,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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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중소기업청 공무원은 흥분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 다음날 중기청 공무원은 출근하자마자 TV 앞에 모여 김 대통령 당선자의 기자회견을 청취했다. 김 당선자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21세기 우리 경제를 이끌어나갈 주체로 언급하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특히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겠다고 약속한 김 당선자의 공약을 떠올리며 “이제 일개 청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기대를 걸었다.

이후 주요 선거에서 `중소기업부` 신설 공약은 300만 중소 자영업자의 표심을 겨냥한 단골 메뉴로 거론됐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중기청을 재편한 `지식중소기업부` 설치를 가장 먼저 약속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도 `중소기업부`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는 산자부의 기업지원 기능과 중소기업청을 묶어 새로운 부처가 탄생할 것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중소기업은 갈수록 늘지만 중소기업청이 부처 산하기관 정도로 인식되면서 종합적 지원이 어렵다는 게 신설 명분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이 약속한 중소기업 전담부처는 모두 `공약(空約)`에 그쳤다. 중소기업부 신설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청`을 `부`로 승격시키는 차원을 넘어선다. 정부 전체 업무 조정과 재편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중소기업 관련 법·제도만 해도 문제가 복잡하다. 헌법, 중소기업기본법, 중소기업진흥촉진법, 벤처기업특별법, 창업지원법, 소상공인특별법 등 중소기업 운영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법령이 무려 700개다. 중소기업 관련 정책도 1600가지로 어느 한 부처 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새 전담부처를 두더라도 또다시 각 부처에 업무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부처 대수술을 각오하지 않으면 중소기업 전담부처 신설은 지키기 힘든 약속이다.

법과 제도만 놓고 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할 `중소기업 천국`이다. 그럼에도 선거철이면 정당과 후보들은 쉴 새 없이 새 약속을 쏟아낸다. 역대 어느 후보도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한 거창한 지원 정책을 내놓지 않은 적이 없다. 대선을 치를 2012년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이미 중소기업부 신설에 적극적이다. 민주통합당은 일찌감치 중소기업부 신설과 재벌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새누리당도 공식 언급은 없었지만 중소기업부 신설에 긍정적이다.

정치권이 중소기업부 신설을 약속하는 것은 누가 봐도 표심(票心)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2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유는 명확하다. 응답자의 98.4%가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과 발전에 `중소기업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반면에 우리나라 대기업의 눈부신 성장이 `대기업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라는 응답은 3.8%에 불과했다. 중소기업부 신설에 관한 질문에는 `필요하다`는 응답이 무려 77.6%였다. 국민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중소기업부 신설을 찬성하는 셈이다.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권은 중소기업부 신설을 약속하지만 쉽게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치권 태도에 은근슬쩍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기존 부처나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의 시선도 싸늘하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 공약의 결과가 어떨지는 후보 스스로도 알고 중소기업계는 더 잘 안다. 대통령 당선자도 어쩔 수 없다.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니고 지난 수십년 동안 여러 차례 입증된 결과다.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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