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공계 부활을 꿈꾸며

얼마 전 이공계 교수가 점심식사 자리에서 “요즘 이공계 학생들 가운데 핵심 소프트웨어(SW) 플랫폼 기술을 다룰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다”며 개탄했다. 토종 SW 플랫폼이 iOS나 안드로이드 같은 외산 운용체계(OS)의 시장 지배적 전략에 밀리는 바람에 교육현장에서조차 학생들이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이 하드웨어와 SW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가능한 핵심 기술을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기피한다는 것이다.

교수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앞으로 수준 높은 공학도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결국 국가 과학기술 분야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공계 학생의 질 저하는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대학 이공계 석·박사과정 현황을 들여다보면 심각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방의 모 국립대 이공학부는 올해 석·박사과정 140명을 모집했는데 80명이 지원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입학금을 내고 등록한 학생 수는 60명에 불과했다. 정원의 절반도 못 채운 것이다.

지난해 대학원과정을 처음 개설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도 올해 180여명(2011년 미충원 인원 포함)의 석·박사과정을 모집했지만 74명만이 입학했다. 다른 대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학생 지원도 적지만 대학이 함량 미달 학생까지 받아들일 수 없어 석·박사과정 인원은 계속 준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이공계 기피 현상은 지속될 것이 틀림없다. 올해 초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원 석박사과정과 이공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이공계 기피 요인 조사를 벌였다.

가장 큰 기피 요인으로 정부의 이공계 인력양성 의지와 정책 빈약을 꼽았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이공계 출신 고급 관료를 양성해야 한다고 답했다.

며칠 전 조현정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19대 국회에 입성한 이공계 출신 의원이 24명이라고 밝혔다. 그 말대로라면 전체 의석 대비 이공계 당선자 비율은 8%다. 숫자로만 보면 18대 국회 13명보다 많이 늘었지만,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이공계 비율이 56%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서 최근까지 정보기술(IT) 기업을 경영해 온 이공계 출신 CEO들이 눈에 띈다. IT산업과 기술 인력을 우대하는 실질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국회의원 몇 사람의 노력으로 단박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회가 이공계 기피현상을 누그러뜨리고, 이공계 학생들이 열정과 희망을 갖고 수준 높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씨앗을 뿌려주길 희망한다.


정재훈 전국취재부 부장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