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관장의 존재 이유

요즘 정부출연연구기관장들 표정이 좋지 않다. 4·11 총선만 끝나면 출연연 거버넌스와 관련한 압박성 `푸닥거리`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책성 소문도 돈다. 정부가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낸 4개 기관장을 손본다는 소문이다. 사정 감사에 착수한 결과, 2개 기관장이 비리 혐의로 걸려 자리가 위태롭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출연연 기관장 자리는 사실 정부가 좌지우지한다. 임기 3년을 보장한 계약직이지만, 예산을 쥔 상급부처가 사표를 내라면 낼 수밖에 없다. 여론전에 이기더라도 `돈줄` 끊는다는데 방법이 없다.

실제 MB정권 초 임기가 1~2년씩 남은 출연연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표부터 냈다 돌려받은 일도 있다. 지난해 초엔 우리나라 우주기술 개발의 본산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이 교육과학기술부 `등쌀`에 못 이겨 임기 9개월을 남겨두고 그만뒀다.

기관장이 하는 일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도 있다. 위상은 차관급이지만, 정부부처 사무관이 `사람 잘라달라`(보직해임)는 전화도 한다. 웬만해선 행사도 못 빠진다. 눈도장이라도 찍어놔야 기관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사나흘 호되게 앓았다. 감기 탓도 있었지만, 1주일에 3~4회 서울출장과 연일 이어졌던 연구원 순회 간담회 등 빡빡한 일정으로 체력소모가 컸던 탓이다. 무쇠 체력으로 소문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도 지난 연말과 연초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 출장 다니느라 얼굴이 반쪽이 됐다.

과거 해온 R&D는 대부분 멈출 수밖에 없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초기 씨감자 연구에 미련이 남아 새벽에 출근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오면 원장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봤다. 이젠 거의 포기 단계다. 간간이 연구진행을 살피는 정도다.

기관장은 두 틈바구니에 끼어있다. 정부 산하 조직이라는 것과 연구원들 성향이 고집도 세고, 독특하다는 것이다. 소신 없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정부정책이나 연구원, 노조 등에 휘둘리기도 한다. 출연연 거버넌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공감을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려고 나선 사람은 드물다.

지난 2010년만해도 기관장과 연구원들 대부분이 출연연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일단 옮겨놓고 개별 기관 법인격 해체 등을 논의하자는데 동의했다. 달라진 건 둘이다. 하나는 대통령 임기가 얼마 안 남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을 풀어가는 방법이 거칠다는 것이다.

앞으로 총선 승자에 따라 분위기는 다소 달라질 수는 있어도, 청와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화살`을 출연연이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관장이 미래에 대한 가치판단이 흐려지면 기관도 망하고 국가도 함께 망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산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