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시스템이 패러다임 변화의 정점에 섰다. 구글·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개방·혁신·창의를 R&D에 도입하고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면서 추격형 R&D에만 의존해왔던 국내 IT기업은 지난해 위기론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민관이 `창의적인 생각으로 기술혁신을 도전적으로 주도하고 상호 협력해 동반성장하는 방식`의 R&D 4.0을 추구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 미래는 어둡다. R&D 4.0은 2020년 국민소득 4만달러, 무역 규모 2조달러를 달성해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구심점이다. 무역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국가경제는 R&D 4.0으로 주력산업 고부가치화와 신성장동력 실용화를 앞당겨 지속적인 무역성장을 일궈야 한다.
R&D 4.0은 건전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실현하는 열쇠기도 하다. 대외 돌발 변수가 빈번한 상황에서, 국가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는 대기업과 강소기업·글로벌 중견기업의 하모니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관은 R&D 4.0이 널리 확산하도록 정책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올해 4조7000억원 규모의 지경부 R&D 자금이 R&D 4.0 탑을 쌓기 위한 첫 주춧돌이다.
“올해 정부 R&D 사업 핵심 키워드는 창의·도전·소통·동반성장입니다.”
우창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산업기술평가본부장은 지난달 7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지경부 산업융합원천기술개발사업 설명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올해 처음 개최된 자리에 참석한 300여명의 산학연 분야 연구 인력들은 정부가 지난 연말 R&D제도 혁신을 언급한 터라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의 R&D사업 접근 방식 변화를 높이 평가했다.
정부는 명확하고 핵심적인 과제 목표만 제시함으로써, 민간 창의성 제고는 물론이고 도전적인 R&D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키로 했다. 과제 제안서도 1장으로 축소했다. 참여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줬던 개발·시장·특허 동향, 연도별 개발계획, 기업 현황 등 각종 서식을 없애버렸다. 창의력으로만 승부를 걸자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가 과제 제안(RFP)을 5~10장 분량에 담아 과도하게 서류 작성을 요구하다 보니 연구 인력들은 고정 틀을 과감하게 깨지 못하고 과제 요구 서류 작성에 급급했다. 게다가 서류 작성 능력이 탁월하고 경험이 많은 특정 연구 인력만이 R&D 과제에 참여하는 쏠림 현상이 있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신진 연구 인력은 복잡한 지원 프로세스에 질려서 과제 참여를 포기하는 등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R&D 패러다임을 바꾼다. 기존 R&D를 창의적 R&D, 동반성장 R&D, 도전적 R&D, 소통하는 R&D 등 R&D 4.0으로 전환하기 위해 R&D 사업 지원 체계를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정부는 올해 동반성장 R&D를 위해 고용촉진형 인건비 지원제도를 새롭게 정비했다. 정부는 기업의 경우 그동안 신규 연구 인력 채용 인건비의 30%만을 정부 연구비에서 충당하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신규 연구인력 인건비는 물론이고 기존 연구 인력 인건비도 정부 연구예산으로 사용하도록 확대,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 부담을 덜어줬다.
대학이 계약직 전담 연구 인력을 신규 채용해 R&D 과제에 참여할 경우 우대점수(3점)를 매기는 등 정부는 올해부터 국가 R&D가 산학에 동반 성장 분위기를 조성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했다.
실패 위험이 높은 R&D 과제에 과감히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연구 인력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성실 실패를 정부가 인정해주는 `성공불제도`를 평가 체계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현재 90%대인 R&D 사업 성공률을 50%대로 현실화하기로 했다. 거품을 빼기로 했다.
글로벌 R&D 협력도 확대한다. 국내 연구 인력 중심으로 R&D를 추진하는 형태는 융·복합화 등 해외의 빠른 기술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 우수 인력과 R&D 협력으로 R&D 성과를 제고하고 국내 연구 인력의 경쟁을 유발해 연구역량을 동반 성장키로 했다. 정부는 먼저 미국·유럽 등에 거주하는 한인 과학자를 대상으로 R&D 과제 관련 정보공유 게시판을 제공, 국내 R&D 사업에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이다.
이 밖에 대중소기업, 산학연이 상생 협력하는 R&D 생태계도 조성한다. 동반 성장 실적이 우수한 기업에 R&D 지원을 우대하고 포상한다. 대기업은 대형 과제 등 제한적인 때에만 과제를 주관하도록 하고 대기업이 주관해도 중소·중견기업의 참여 비중을 의무화해 중소·중견기업의 혁신 능력을 제고하기로 했다.
서영주 KEIT 원장은 “무역 2조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선 시장 선도자형 R&D 전략이 필요하다”며 “누구든 혼자서 하기보다는 상호 협력하는 공동 R&D 노력이 필요하고, 협력 대상 범위도 국제무대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현재 수출 구조와 R&D 역량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며 “R&D 고도화로 주력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서비스로봇, 의료기기, SW 등 신성장동력을 포스트 주력산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팀장
, 배옥진기자 정미나기자 김용주기자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