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도 지식경제부 산업자원협력실장 jaedo@mke.go.kr
25억4556만달러. 3년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 흥행실적이다. 소나타 12만7000여대를 수출한 실적과 맞먹는 규모다.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에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차를 만든 다해도 4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영화는 엄청난 부가가치 산업이다.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아닌 무형의 문화상품이 국가 경제성장동력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예다. 하지만 기념비적 흥행실적을 올리고 3D 영화시대의 문을 연 아바타 탄생 뒤에 14년 동안 이 영화를 구상한 감독의 고민과 열정, 4년이 넘는 제작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간과된다.
제작비와 홍보비를 합쳐 투입된 총 5억달러 투자비용, 도산 위험을 무릅쓴 제작사 20세기 폭스, 믿고 기다린 투자자의 인내 시간을 다시 헤아리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자동차 공장의 4개월`이 무색해진다.
정부가 하는 일 중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 동남아·중동·남미 등 신흥국가의 원전과 도로망 건설, 자원개발 등 국가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일이다. 성과물로 얻을 수 있는 실적은 보통 30억~40억달러, 크게는 그 10배에 이른다. 한 번의 수주가 더 큰 계약으로 가는 길을 열기도 한다.
미국, EU 등 선진국의 경기침체에도 신흥시장을 형성하는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UAE 등의 국가들은 성장을 지속하며 세계 경제를 떠받들고 있다. 경제개발 시대 전 세계를 누비던 한국의 상사들처럼 이들 나라에서 우리 기업이 플랜트, 인프라, 자원개발, 농수산 등 다양한 분야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이를 지원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역할이다.
신흥시장 프로젝트는 의사결정권이 그 나라 정부에 있는 경우가 대다수고, 대규모 투자가 뒤따르기 때문에 정부 역할이 핵심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상대국 정부와 다양한 형태의 약정을 맺고, 국책기관을 통한 재정적 지원을 제안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상외교를 통해 논의 대세를 우리 쪽으로 끌어오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신흥 시장에서는 각국 정부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터 최전선에서 최종 병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현지 공관에 파견된 상무관과 에너지관이다. 1970~80년대 이들의 역할이 한국기업의 상품 수출을 지원하는 `경제 외교관`이었다면 21세기 새로운 전쟁터는 정치·경제·외교를 총망라한 종합예술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에 못지않은, 공공 기업가(public entrepreneur)로서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이 열린 것이다.
이번 주 국내에서는 신흥시장 주요 전략국가의 상무관과 에너지관이 귀국해 훈련 과정을 거친다. 산업자원협력·무역·에너지 분야의 새로운 정책 및 기술동향을 다시 배우고, 각기 맡은 나라에서 프로젝트 수주전략도 가다듬는다. 이 교육을 바친 뒤 현장으로 돌아가 경쟁 국가의 강한 도전과 싸울 이들 역할이 기대된다. 아바타 잉태 기간이 10년이 넘게 걸린 것처럼 이들이 현장에 있는 동안 성과를 보지 못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가발과 가방` 수출을 위해 뛰었던 한국 기업가 정신이 미래 IT산업을 주도하는 지금 대한민국을 만든 것처럼, 이들이 닦아 놓은 길에서, 이들이 뿌린 씨앗에서 우리나라 다음 세대를 책임질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