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 <40>밥과 빵의 차이

밥을 같이 나눠먹는 사람들의 끈끈한 관계를 식구(食口)라고 한다. 같이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인간적 관계가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밥을 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화목(和睦)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화목(和睦)하다는 말의 `화(和)`라는 한자도 벼를 뜻하는 `화(禾)`와 입을 뜻하는 `구(口)`가 어울려 이루어진 말이다.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말이 있다. 만민족(滿民族)과 한민족(漢民族) 요리의 정화(精華)를 흡수하고 결합해 만들어 낸 요리로 중국 역사상 제일 유명한 중화대연(中華大宴)으로 진귀한 요리가 다 모인 중국 최대의 호사함과 고급스러움이 극치를 이루는 대연회식이다. 만한전석은 밥을 먹으면서 만주족과 한족의 민족적 갈등을 해소하고 대통합을 이루어낸 음식이다. 이처럼 우리는 밥을 같이 나눠 먹으면서 화목한 식구나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 익숙하다.

그런데 빵을 나눠먹는 인간적 관계는 `동료`를 의미하는 `companion`이라는 말을 쓴다. 혈연관계인 식구와 우정을 나누는 동료의 차이는 인간적 관계 맺음의 강도(强度)에서 차이가 난다. 동료보다 식구가 그 만큼 끈끈한 인간적 관계가 강하게 나타난다. 밥을 지으면서 밥알과 밥알이 끈적끈적하게 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밥을 나눠 먹는 사람들의 사람간의 관계도 그 만큼 끈끈한 인간적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빵은 빵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주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밥이 관계의 음식이라면 빵은 개체나 실체로서의 독립성을 갖는 음식인 셈이다. 유목 문화권에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동식 생활을 하는 데에 빵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어둠이 깔리기 전에 빨리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빨리 빵을 구워서 빨리 먹어야 한다. 오늘날 패스트푸드가 발달한 것도 이와 같은 서양 사람들의 이동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는 책이 있다. 그 만큼 빵은 이동하면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데 적합한 음식이지만, 밥은 모여서 먹으면서 촌락 공동체를 만드는데 적합한 음식이었던 셈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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