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 <39>`국물도 없다`는 말은 심한 욕이다!

밥은 언제나 국이나 반찬과 함께 먹어야 되는 어울림과 관계의 음식이다. 밥을 먹을 때 반찬이나 국과 함께 먹는다. 서양음식은 이에 반해서 개체론적 또는 실체론적 음식이다. 음식과 음식이 철저하게 분리·독립돼 각각의 음식이 하나의 온전한 음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양의 밥상은 밥과 반찬이나 국과 함께 섞여 어우러지면서 제 맛이 난다. 비빔밥의 각 재료를 하나씩 먹을 때 맛의 합이 비빔밥을 먹을 때의 맛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든 재료가 한곳에서 섞이고 비벼졌을 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융합의 맛이 창조된다.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먹는 것처럼 동양인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병렬적, 비선형적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한국 사람들은 밥을 먹는 순서도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한꺼번에 한 상에 차려놓고 먹는다. 동시다발적, 비선형적, 원형적으로 음식 먹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반면에 서양은 식전 에피타이저, 주요리, 그리고 식후 디저트를 순서대로 먹는 선형적, 단계적, 절차적 음식이 발달돼 있다. 이동을 해야 하는 유목민에게는 빵은 다른 음식과 분리되어 그 자체가 하나의 완전한 음식이 된다. 음식 하나하나의 개체성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서양인들은 선형적, 시계열적 사고에 익숙하다.

서양의 음식은 국물이 없는 건식재료이기에 접시를 사용하고, 동양의 식탁은 국물이 있는 건식과 습식의 혼합,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므로 이를 담을 수 있는 사발을 이용한다. 서양음식에서는 국물 없이 음식 하나하나를 따로 먹는다. 각 개체를 따로 따로 보존하려는 개체성이 드러나는 반면 동양음식은 국물과 음식을 동시에 같이 먹는 동시성을 띠고 있다. 국물이 있는 음식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음식은 설렁탕, 추어탕, 삼계탕처럼 국물이 주된 음식 맛을 조절한다.

우리말에 `국물도 없다`는 말은 그래서 심한 욕이다. 국물도 없다는 말은 인정사정 안 봐준다는 말이다. 그 만큼 우리 문화권에서는 국물은 단순한 국물이 아니라 삶의 원기소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국물과 분리시킨 건식형 음식은 하나하나가 독립된 개체로서의 온전한 음식이 되지만, 동양의 음식은 국물이나 주변 다른 반찬과 어울려서 먹어야 되는 관계지향적 음식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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