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하이닉스와 엘피다 그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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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엘피다메모리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세계 4위 D램 반도체 회사, 일본 메모리반도체 자존심의 몰락이다. 예견됐지만 현실로 나타나자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제조업체 파산 규모 역대 최대다. 제조업 몰락을 상징한다.

엘피다 역사는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NEC와 히타치제작소가 D램 사업을 합쳤다. 한국업체 득세로 위축된 사업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의기투합이다. 같은 해 한국에선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이른바 `빅딜`이란 이름으로 합쳐졌다. 현 하이닉스반도체다.

일본과 달리 정부가 주도한 합병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합병으로 인한 부채 증가와 현대그룹 사태가 맞물려 하이닉스는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채권단은 결국 2001년 10월 공동 관리체제를 결정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해외 매각 외엔 답이 없다고 봤다. 한국 정부의 기업 지원을 백안시 한 미국 정부를 의식했다.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온에 애걸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하이닉스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고아 신세가 됐다.

험난한 가시밭길을 임직원 스스로 헤쳐나갔다. 노조는 `자존심과 혼`을 담보로 내놓았다. 경영진은 임금 동결, 임원과 인력 감축과 같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 때 엘피다는 순항했다. 2003년에 미쓰비시 D램 사업을 인수했다. 이듬해 도쿄 증시에 상장했다. 2006년엔 후공정 전문 자회사인 아키타엘피다도 세웠다. 흑자도 이어졌다.

두 회사의 운명은 2007년 반도체 불황을 기점으로 다시 엇갈렸다. 엘피다는 분기 적자 전환을 시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이닉스라고 불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엘피다엔 없고 하이닉스엔 있었다. 이젠 친구처럼 익숙한 구조조정이다. 경영진은 임원을, 직원은 임금을 줄였다. 미세 공정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 투자만큼 아끼지 않았다. 유동성 위기와 벼랑 끝 `치킨 게임`에서 하이닉스가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임직원의 생존 의지였다.

2012년 2월, 하이닉스는 SK라는 새 주인을 찾았다. 엘피다는 하이닉스가 오래 전 갔던 험난한 길에 접어들었다. 엘피다가 하이닉스처럼 되살아날까. 회의적이다.

엘피다도 강점은 있다. 모바일 메모리 기술력이 있다. 그런데 반도체 사업의 기반인 공정기술이 허약하다. 무엇보다 하이닉스 임직원과 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 별다른 구조조정도 없던 탓이다. 매각 외엔 자력 회생 길이 안 보인다.

D램 사업을 버린 도시바가 다시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엘피다를 지원했던 일본 정부는 해외 매각을 유도할 것이다. 미국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더리스 등이 물망에 올랐다. 마이크론은 모바일 D램을, 글로벌파운더리스는 생산시설을 탐낸다. 그러나 인수할 지 미지수다. 한다 해도 지난한 작업이다.

당장 급한 건 애플이다. 메모리 협력사가 여럿 있어야 가격 협상을 주도할 수 있는데 그 축이 흔들린다. 얼마 전 엘피다에 선수금을 줬다는 소문에 휩싸인 애플이다. 인수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지원을 엘피다에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메모리 산업은 또 한 번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일단 미국 기업이 열쇠를 쥐었다. 그 방향에 따라 엘피다 운명도, 산업 재편도 결정된다.

업계 구조조정 회오리를 피한 한국 업체만 유리하다. 그렇다고 `치킨게임 승리`에 도취할 때는 아니다. 엘피다의 실질 경쟁사는 마이크론, 대만 난야다. 이들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아직 공급 과잉 상태에서 가격 상승 효과도 제한적이다.

하이닉스가 투자할 돈이 없어 철 지난 장비와 씨름을 할 때다. 엘피다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자만심이 지금과 같은 몰락을 불러왔다. 우리 업체가 교훈으로 깊이 새길 대목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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