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문화다] <5> `나는 게임이다` 심포지엄

게임의 사회·문화적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김종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은 “인류가 개발한 어떤 게임 미디어보다도 온라인 게임이 영향력이 더 크다”면서 “현실을 뛰어넘어 가상현실까지 제공하는 디지털 게임 속으로 인류의 새로운 엑소더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게임은 가장 최신 미디어기 때문에 세대 간 경험 차이가 크고,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받는 공격이나 `희생양 찾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디지털 엑소더스` 시대를 맞아 게임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심포지엄 `나는 게임이다`가 21일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렸다.

문화·IT·정책·교육 전문가 여덟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게임과 사회의 긍정적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했다. 문화연구 전문가들은 현재의 게임 규제가 실효성이 없으며, 미디어의 폭력성과 그 영향력을 증명하는 근거도 약하다고 공통적으로 바라봤다. 무엇보다 게임이 주요한 문화가 된 만큼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게임문화를 향한 본격적 연구가 첫발을 뗐다.

◇“게임은 청소년 문화다”=정소연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강제적 셧다운제를 비롯한 정부 규제가 청소년 문화의 몰이해에서 출발, 폭력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일반의 문화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제대로 된 영향력을 연구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 나아가 청소년 문화 정책이 청소년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심각한 우려 수준이라고 못 박았다.

정 팀장은 “대다수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이 매우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부정적 기능만 강조해 무분별한 규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청소년 보호를 핑계로 청소년의 권리를 배제하고 통제하는 것”이라며 “청소년 문화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게임문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학교-사회-가정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도 “1997년 `일진회`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청소년 보호법이, 결국 한국의 만화산업을 몰락시킨 역사였음을 정책입안자들이 종종 잊고 산다”면서 IT 영역에서 청소년 보호 명목으로 제기됐던 규제 정책들은 대체로 사회적 논란을 낳고 폐기돼 집권 정당의 신뢰성을 낮춘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게임은 사회적이다”=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전 세계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게임 역시 사회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젊은 세대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게임을 서로 구별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고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 교수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게임은 그것을 통해 누군가와 접속하거나 소통하며 지극히 사회적인 놀이 문화를 구성한다”면서 “게임의 개발과 제작 또한 집단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고도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말했다. 게임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골방의 오타쿠(매니아)`와 게임 이용자는 일반적인 문화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게임은 이제 소통의 내용이며 동시에 소통을 매개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정의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게임이 사회관계의 도구가 됐고 미디어가 되는 데서 나아가 일상이 됐다”면서 최근의 학교폭력과 게임의 연관성을 찾는 시도에 대해 “1970, 1980년대 텔레비전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라며 화두를 던졌다.

윤 교수는 예전에는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은 TV 수상기를 본다는 의미지만 지금은 콘텐츠를 보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왜 게임을 하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게임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구축되는가”로 초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게임은 열린 텍스트다”=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가치론이 게임의 경제와 교육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연구의 부재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부정론이 확산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며, 이는 그동안 산업계나 연구자들의 자기 성찰이 부족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게임이 산업적으로는 이득이지만 교육적으로는 좋지 않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버리면서 게임에 대한 문화적 가치론마저 상실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학부모, 교육계 주장을 대변하는 정치계와 게임의 수출효과 및 교육적 효과를 내놓는 산업계가 서로 자기 진영에 맞는 논리만 주장하면서 `흑백논리`에 갇혀버렸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장기적 연구과제로서 발전시킬 기회마저 함께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박상우 게임평론가도 “데이터 없이 발언권도 없다는 것이 정책 연구자들의 상식인데 최근의 게임 규제는 연구한 자료가 없는데도 발언에 힘이 실린다”고 비판했다. 학교폭력과 게임의 연관성에 대한 규제에도 “이하 설명은 생략한다” 식으로 근거가 빈약하며,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로 반대 의견을 상식에만 기댈 뿐, 실증적 연구가 없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한국적 연구 과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교육적 게임에 대한 논의나 기능성 게임 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이는 게임의 본질적 가치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교육이나 기능적 역할이 아니라 즐거움 그 자체기 때문이다.

◇“게임은 문화다”=박태순 한림대학교 겸임교수는 게임이 이미 부상문화가 아니라 지배문화가 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것,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반발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더불어 인간 고유의 자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폭력과 연관성을 찾는 것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며, 게임으로 인한 장기적 변화를 추적하고 달라진 가치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게임의 가능성,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통해 그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게임사들도 게임 이용자들이 어떻게 게임을 이용하고 어떤 철학으로 게임을 개발할지 다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우 기술미학연구회 연구원도 “교육부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게임을 강도 높게 규제하는 정책을 쏟아냈다”면서 “교육문제를 게임문제로 탈바꿈시키며 책임을 훌륭하게 게임에 전가했고, 교육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학부모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예술과 학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며, 사회가 놀이문화로서 게임이나 예술을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여 밝혔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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