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업자가 저가 수주를 앞세워 기업 인터넷전화 설비 구축 시장을 점령했다. 교환기(PBX) 공급과 시공을 도맡아 해오던 중소업체의 매출이 반토막 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정보통신공사협회 등 업계에 따르면 KT·SK텔레콤·LG유플러스 같은 대형 통신사가 인터넷전화 설비 구축 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교환기 대리점과 시공사업을 하던 A업체는 최근 수주를 추진해 오던 사업체로부터 갑작스러운 `진행 불가` 통보를 받았다. 통신사가 통신료 감액, 장비 할인 등 조건을 내세우며 일사천리로 계약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통상 A사 같은 업체는 입찰을 통해 사업을 수주하면 삼성전자와 LG에릭슨 등 장비회사에서 키폰 및 교환기를 공급받아 시공에 착수한다. 장비 판매와 시공대행이 주요 매출원이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통신사가 장비 할인 등을 내세워 입찰 없이 바로 수요처와 계약을 맺는 사례가 빈번해지며 중소업체가 계약주체에서 단순 시공용역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A사 사장은 “통신사들이 정상가 45%정도에 장비를 공급하고 통신료에서 수익을 챙기는 모델로 사업을 하고 있다”며 “유선인프라를 가진 통신사가 장비까지 싼 가격에 공급한다면 중소업체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지가 입수한 한 통신사의 기업 인터넷전화 서비스 계약 단가표를 보면 이 회사는 정상단가에서 50% 이상 할인 된 금액으로 교환기를 공급 중이다.
통신사들은 2~3년 약정으로 자사회선 사용을 조건으로 걸고 장비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챙긴다. 중소업체와 계약 직전에 있는 사업장에 교환기를 무상으로 제공하며 사업을 따 낸 사례도 보고됐다.
상황이 심각하지만 해당 중소업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통신사 인터넷전화 구축 사업이 부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장비 할인 등을 과다한 이익제공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위원회 관련 법률의 기본적인 취지는 경쟁행위 상에 있는 사업자가 아닌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소비자(수주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이상 제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업계는 인터넷전화 사업에서 대기업(통신사, 장비회사)과 중소업체의 관계를 SSM(슈퍼 슈퍼마켓)과 지역상인 구도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공사협회 관계자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대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중소업체들의 일감마저 빼앗고 있다”며 “대기업의 작은 사업 파트 하나가 작은 업체들에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