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요를 관리하는 것만으로 전력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발전소 건설로 공급을 늘리는 것만큼 수요관리로 수요공급 균형을 충분히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관리는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제로 발전소’로 불리며 기후변화 대응과 가격 안정화에도 큰 장점이 있다.
실제 아침기온이 영하 10도로 떨어진 지난 1월 5일 전력거래소가 부하관리제도 일환으로 수요자원시장을 개설해 역대 최대 피크치 경신을 막은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는 2008년부터 전력 최대 수요 억제를 위해 전력 ‘부하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부하관리제도는 전력 사용 대용량 고객이 사전에 계약을 체결하고 전력수요가 높은 시기에 고객부하를 스스로 줄이면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런 부하관리제도만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설비 예비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전력거래소의 수요자원시장과 한전의 주간예고제·지정기간제가 대표적이다.
수요자원시장은 전력공급 예비력 500만㎾ 이하나 최대 전력 경신이 예측될 때 전력거래소가 하루 전 또는 한 시간 전에 시장을 개설한다. 전력거래소는 시멘트·철강·제련 등 감축가능용량이 300㎾ 이상인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수요자원시장에 참여하는 고객은 인터넷을 통해 부하감축 가격과 감축량을 입찰한다. 이후 전력거래소는 입찰내역을 바탕으로 감축시장가격(지원단가)과 고객별 감축계획량을 결정, 고객별 감축시간과 감축량을 통보한다. 감축을 통보받은 고객은 해당 시간에 통보받는 감축량만큼 부하를 감축한다. 실제 감축여부를 확인 후 정산금(지원금)을 지급받게 된다. 이때 시장원리에 따라 입찰가격을 높게 제출하면 감축량을 통보받기가 어렵다.
수요자원시장은 하루 전 또는 한 시간 전에 실시하기 때문에 수요예측이나 기상 변화 등으로 인한 오차가 적어 다른 제도에 비해 부하감축 효과가 높다.
전력거래소가 최근 3년간 낙찰가로 지급한 금액은 평균 ㎾당 1000원 내외로 실제 산업용 전기가격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전력거래소는 2009년에 시장을 21.5시간 개설해 평균 36만4000㎾를,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26.5시간과 21시간을 열어 51만3000㎾와 69만㎾를 줄였다.
2010년에는 보상 지원금으로 정부 예산 134억원을 투입해 51만3000㎾를 낮췄다. 공급량에 따른 LNG발전기나 송변전 건설을 고려한다면 약 932억원의 건설투자를 절감한 효과다. 사업의 경제성을 가늠하는 평가지표인 투자대비 편익비율도 6.98%에 이른다.
전력거래소는 부하 특성을 고려해 2개월 전·1주 전·1일 전 예고로 부하관리를 시행하며 예고기간이 짧을수록 지원금은 높아진다. 수요관리에 참여하는 기업 고객은 자신의 부하특성에 따라 부하도 줄이고 지원금도 받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전이 운영하는 제도도 있다. 예고 기간은 길지만, 공급과 수요예측에 보다 안정적인 지정기간수요조정제와 주간예고수요조정제다.
지정기간제는 ‘하계휴가보수’라는 이름으로 1985년 시행했다. 주간예고제는 ‘자율 절전제’로 1995년 처음 실시됐다. 한전은 1985년부터 국내 에어컨 등 냉방부하 급증에 따라 관련제도를 시행해왔다.
지정기간제도는 보통 전력사용량이 급증하는 7월 초에서 8월 말 사이 약정에 따라 정해진 날짜와 정해진 시간대의 1시간 평균전력을 신청고객이 직접 지정한 최대 부하량(CBL)보다 30% 이상 감축하거나 3000㎾ 이상의 전력량을 줄일 때 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주간예고제는 국내 전력수급과 수요 상황을 고려해 한전이 약정 고객에게 시행 기간과 시간을 예고해준다. 지정기간제와 마찬가지로 30분 단위 평균전력을 고객지정부하량보다 20%(10%) 이상 감축하거나 3000㎾ 이상 줄였을 때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한전은 2011년 하계기간에 지정기간제로 157만㎾를, 주간예고제로 99만㎾ 전력량을 감축했다. 올해에는 전력수급대책회의 수급전망에 따라 지정기간제로 100만㎾를, 주간예고제로 200만~300만㎾ 전력량을 줄일 계획이다.
2011년 지정기간제 참여 약정 고객은 2010년 1152곳보다 줄어든 1059곳이지만, 주간예고제는 2010년(2433곳)에 비해 1.65배 증가한 4013곳에 이른다.
올해도 주간예고제를 통해 절감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의 올해 지정기간예산은 지난해 106억원에 비교해 107억원으로 소폭 늘었고 주간예고제는 지난해 173억원에서 262억원으로 증가됐다.
두 제도를 적절히 활용해 전력피크 절감에 앞장서는 기업이 있다. 지난해 강남지점 수요조정제 고객사 20곳 중 가장 많은 지원금을 지급받은 코엑스다. 코엑스는 2004년부터 제도를 시행, ‘하계피크 절감’과 ‘에너지절약’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코엑스는 154㎸의 변전소를 자체 운영하면서 자가발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코엑스는 지난해 9월에만 한전의 주간예고제와 지정기간제도를 실시해 한전으로부터 지원금 1300여만원을 지급받았다.
코엑스는 지난해 하계 주간예고제로 4만7384㎾를, 지정기간제로 4만7939㎾를 줄여 9만5000㎾ 전력사용량을 절감했다. 코엑스는 지원금으로 주간예고제 1700만원, 지정기간제 3260만원을 받아 지난해 4960만원을 거둬들였다. 액수로는 한전 강남지점 참여사 13곳 중 가장 많다.
하지만 국내 부하관리제도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감축량이 300㎾ 이상인 고객이 대상인데다, 지원금이 적어 고객 확보나 약정체결에 수동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반면에 미국은 가정용·일반용 등 소규모 고객까지 직접부하제어 대상이며 요금체계도 다양해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된다. 또 우리처럼 비상수급 시에만 제도를 가동하지 않고 예비력 확보·전압안정도 향상에도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기술 개발로 주택용과 소규모 일반용 고객까지 대상을 확대해 수요관리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부하관리제도 주요 사업 소개 및 실적
자료: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