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 지나친 상상력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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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사전에 예언한 ‘황당한’ 게임이 있다. 게임은 현실보다 한해 늦은 2012년 김 위원장이 돌연 사망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잡은 북한이 미국을 침공한다는 황당무계한 스토리다.

 게임 속에서 북한은 김정일 사망 후 어지러운 국내 정세를 틈타 적화통일에 성공한다. 급기야 아시아를 장악한 북한이 2018년에는 일본을 점령하고 2027년에 미국 본토를 침공한다는 설정이다. 북한군인 대조선연방이 악당으로 등장하고, 게이머는 ‘레지스탕스’가 되어 세계 해방을 위해 싸운다.

 게임 스토리 제작에는 ‘지옥의 묵시록’ 등을 쓴 유명 각본가 존 밀리어스가 참여했다. ‘천안함 사고’라는 역사적 배경을 시작으로 UN 북한 제재 등 구체적인 세계정세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게임은 북한의 미국 침공을 다뤄 제작 당시부터 격렬한 찬반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적화통일에 성공한 북한 후계자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북한이 쏜 인공위성이 미국 전역의 전자기기를 파괴하는 등 이야기 전개나 완성도 면에서도 게이머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내에서는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반국가적 내용’이라는 이유로 등급분류 거부를 당해 출시되지 못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언젠가는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예측이 아닌 ‘필연(必然)’이다. 결국, 게임 속 예언은 단순 상상력을 동원한 ‘가정(假定)’에 가깝다. 종합적 자료에 근거한 미래 예측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그러나 미래 예측도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생명이다. 상상력이 빈곤한 예측이 오히려 문제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만으로 복잡한 세상사를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 학자나 연구기관이 내놓은 예측 중에는 너무 앞서거나 틀린 내용도 많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년간에 걸쳐 재미난 실험을 했다. 재무 장관을 역임한 사람, 다국적기업의 회장,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학생, 런던의 환경미화원 등 4개 집단을 선정해 향후 10년 동안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율, 환율, 유가 등을 예측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들이 예측한 내용을 10년 뒤에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미래예측 적중률에서 환경미화원 집단과 기업 회장 집단이 공동 1위, 전직 재무장관이 꼴찌였던 것이다.

 “내 예측은 여러 번 틀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지난 2008년 빌 게이츠 회장도 33년간 경영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를 떠나면서 미래시장 예측에 대한 실수를 고백했다.

 MS가 야심차게 내놓은 비스타는 그 실수 중 하나다. 구글이 검색시장을 석권하는 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애플 아이팟과 아이폰에는 손도 한번 못써보고 성공을 지켜봐야 했다.

 빌 게이츠는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예측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업적도 낳았습니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정말 모르고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실수지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새 기회를 잡고 다가올 악재를 막기 위해서다. 예측은 빗나가더라도, 가만히 앉아 코가 깨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정말 위험한 것은 틀린 예측이 아니라, 현실과 다가올 미래 모습에 눈을 감고 있는 안일한 태도다. 아무런 근거 없는 엉터리만 아니라면, 지나친 상상력에 한 표를 던질 때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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