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새해 부처 업무보고를 하면서 중견기업을 오는 2015년 3000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벌 기업에 의존한 우리 산업 경제 구조로는 GDP 4만달러와 무역 2조달러 실현이 어려운 탓에 중견기업 성장 저변을 확대해 선진경제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점에 깊이 공감하고 독려했다고 한다.
1400여개 중견기업 입장에서 나름 반가운 일이다. 정부가 기술료이전 세액공제·인력지원 등을 검토, 중견기업이 앉은 자리를 살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중견기업들은 그동안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였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160여 가지 정부 지원 혜택이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대기업다운 역량을 갖추지 못했지만 대기업이 져야 할 법적 의무를 져야 한다. 대기업으로 분류한 탓에 하도급 거래·세제 혜택·인력 지원 등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지난 1995년 중소기업과 재벌에도 속하지 않던 친목단체인 경제인동우회(현 중견기업연합회)가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지 16년 만에 정부가 중견기업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경제인동우회는 대기업 단체와 중소기업 단체가 산업계 여론을 주도하면서 중견기업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공식 단체를 만들었다.
중견기업은 올해 법적 지위도 얻었다. 그동안 법적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만 분류됐지만 정부가 지난 3월 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중견기업 법적 정의를 내렸다. 중소기업을 졸업한 기업 중 상호출자제한집단이 아닌 기업으로 범위를 정하는 등 중견기업의 존재감을 인정했다.
정부는 이 법에 의거해 내년 약 700개 중소기업이 새롭게 중견기업에 편입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3년간 평균매출 1500억원 이상 기업이면서 자기자본 1000억원 이상 기업이 추가로 중견기업으로 분류, 새해 말 중견기업이 2260여곳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책을 펼치면 매년 10% 신생 중견기업 증가율로 3000개 중견기업이 출현할 것으로 확신한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정부 계산 논리가 가슴에 확 와닿지 않는다. 정부 중견기업 육성책을 보면 기술 역량 강화, 기술 인력 지원 확대 등 기존 중소기업 지원 정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 중견기업 체력에 맞는 혁신적이고 구체적인 육성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0년간 숱한 위기 속에서도 독일이 끄떡없이 버티는 비결은 바로 미텔슈탄트(중견기업) 덕분이다. 정부가 실질적인 중견기업 성장 토양을 만들어 독일 경제처럼 거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