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하고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올 게 왔구나 싶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누구 하나 둘째가라면 화라도 버럭 낼 것 같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IT명망기업들이다. 휴렛팩커드(HP), 마이크로소프트(MS), IBM, 인텔, 시스코, 오라클…. 델, SAP까지 갈 것도 없다.
적게는 30년, 길게는 100년이나 된 이들 기업이 앞으로 10년이 되지 않아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는 IDC의 IT시장 전망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그들은 20세기 우리 인류의 삶을 바꿔 놓은 주역이다. 지구촌을 뒤흔들었던 대공항과 2차 대전 전쟁터를 복구해 일자리로 만들었다. 산업화, 정보화, 생산성 증대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0과 1의 그 오묘한 디지털 세계를 발견해 반도체, PC, 인터넷으로 내놓았다. 사이버 세상이라는 신세계를 열었고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했다.
IDC가 전망 근거로 제시한 팩트들은 명쾌했다. IT분야 투자와 지출의 흐름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서버, 소프트웨어(SW)에 투입했던 기업들의 IT지출과 투자가 대폭 줄어드는 반면,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융합 분야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데이터 스토리지 등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IDC는 변화 원인을 폭증하는 데이터 저장량에서 찾았다. 지구에 사는 70억 인구 세 명 중 한 명은 인터넷을 이용한다. 네 명 중 한 명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 증가와 모바일 기기의 증가는 연평균 40~50% 정도로 데이터 저장량을 늘려 2015년만 돼도 8제타바이트(ZB·1ZB는 10의 21승 바이트)에 달할 전망이다. 클라우딩 컴퓨팅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면 20세기를 풍미했던 IT기업들은 과연 그들이 만든 ‘디지털 덫’에 걸려 중생대 말 공룡처럼 사라지고 말 것인가.
그간 그들이 보여준 폐해를 잘 아는 고객이나 기업들이라면 그러길 바랄 수도 있겠다. 시장의 독점적 위치를 이용해 폐쇄적 카르텔을 만들고 가격 담합과 불공정 행위를 일삼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신생 경쟁기업들을 짓밟았던 20세기 오만했던 그들 말이다.
하지만 공평하게도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이 동시에 사라졌던 6500만년 전 그 때처럼 큰 환경 변화가 왔다. 기술의 변화는 그들에게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방과 공유, 공생의 패러다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프랭크 젠스 IDC 수석애널리스트는 나름의 해법도 제시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며 기존의 틀을 고집할 게 아니라 과감하게 차세대 기술에 맞춰 변신하라고. 몸집을 가볍게 하고 신기술을 갖고 있는 신생 기업들을 인수하라는 비즈니스 팁도 내놓았다.
오만의 끝은 멸종이다. 환경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생태계를 파괴했던 공룡들의 끝처럼. 이미 거대한 흐름은 시작됐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