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아들 · 딸과 함께 벤처 창업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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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 줄에 들어선 남자다. 기술 대기업 임원이다. 수의학을 전공하는 딸을 뒀다. 은퇴를 앞둔 그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했다. 애완동물과 관련 온라인 사업을 구상했다. 전망도 괜찮지만 무엇보다 수의사가 될 딸과 같이 오래 하기 좋은 사업이라 여겼다.

 몇 해 전에 들은 얘기다. 전해들은 거라 누군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정말 구상대로 했는지 궁금하다. ‘참 멀리 보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하고 잊은 그 사람 얘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10월 고용 동향 덕분이다. ‘고용대박’ 장관이 말실수를 사과한 바로 그 통계다.

 간추리면 이렇다. 취업자가 1년 전보다 50만1000명이나 늘어났다. 실업률도 2.9%로 확 떨어졌다. 알고 보니 취업자 대부분 50~60대다. 20대는 제자리, 30대는 되레 줄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은퇴와 청년 실업이 동시에 일어나 생긴 현상이다.

 베이비부머는 정말 ‘대책 없이’ 노후를 맞았다. 부모 부양하고 자녀와 살림을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렸다. 정작 장성한 자녀는 직장을 잡지 못한다. 노후 준비는커녕 자식 부양을 위해 재취업을 할 판이다. 50대가 40대를 제치고 최대 노동력 공급원이 된 이유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젊은이도 어려운 취업 시장에 중년층을 반기는 곳은 없다. 자연스레 창업에 도전한다. 음식점 등 이른바 생계형 자영업에 먼저 눈길이 간다. 하지만 안 해본 일을 뒤늦게 하려니 힘들다. 머잖아 두 손 바짝 들 게 뻔하다.

 창업 실패는 가계 빚만 키운다. 9월 말 가계 빚이 900조에 육박했다. 가처분 소득이 떨어진다. 실패한 창업은 경기 회복은커녕 침체만 부추긴다. 일자리가 더 준다. 준비 없는 창업 대열이 또 꼬리를 문다. 악순환 고리다.

 고령화 시대다. 자녀에게 노후를 맡기는 시절이 끝났다. 인생 이모작도 모자라 삼모작까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지금 40대라면 지금까지 일한 기간보다 더 오래 일을 해야 할이지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족기업(Family Business) 창업은 어떨까. 은퇴 시점을 늦춘 부모와 취업대신 창업을 생각하는 자녀의 ‘의기투합’이다. 가족기업은 사실 매우 일반적인 기업 형태다. 세계 주요 기업도 처음엔 이렇게 출발했다. 강한 결속과 신뢰는 인건비 절감이 절실한 초기 창업의 안착에 도움이 된다.

 포화한 전통 자영업도 잠시 잊자. 차라리 벤처에 도전하자. 자영업이 벤처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하나 착시다. 부모나 자녀 모두 익숙하지 않다. 경쟁도 치열하다. 낮은 성공 가능성은 벤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 자녀가 경험했거나, 관심을 기울이고 준비한 벤처 창업이라면 돈 많이 들인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 개설보다 더 오래 성공할 수 있다.

 다만, 기업공개(IPO)와 같은 거창한 꿈을 당분간 잊자. 온 가족 먹고사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만 일단 목표로 하자. 더 키우려는 욕심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다음 부려도 된다.

 사실상 해체된 가족 복원에도 도움이 된다. 오로지 회사 일만 한 아빠는 가정에서 외톨이다. 엄마와 자녀 관계의 이음매도 입시 교육뿐이다. 조기 은퇴한 아빠와 일자리 못 찾은 아들, 딸이 모처럼 공감대를 형성한다. 불경기와 고용정책 실패가 해체 가족을 다시 이어주는 셈이다.

 고용정책 당국도 반길 만하다. 고용 지표를 한꺼번에 개선할 수 있다. 어쩌면 39세 이하로 제한한 청년 창업 지원 제도를 없앨지 모른다.

 뭘 하든 중요한 건 철저한 준비다. 필요하면 부모, 자녀가 같이 창업 교육을 받아도 좋겠다. 아 참, 또 기억이 난다. 딸이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수의학과로 유도한 이는 아빠였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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