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위험기피형 사회와 IPv6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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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렬 KISA 원장

‘모래사장에 떨어진 바늘 찾기’라는 말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 속에서 바늘이 떨어진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라는 말도 확실한 주소 없이 이름만으로 수많은 김 서방 중에서 누가 자기가 찾는 김 서방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공간 속에서 주소는 사물이나 사람의 위치를 표시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전자공간에서도 주소는 중요하다. PC 등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고유한 주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 주소체계 IPv4는 사실상 할당 종료됐다. 스마트폰 보급 확산 등 무선인터넷서비스 활성화와 유무선통합서비스 등으로 더 이상 남아 있는 인터넷 주소는 없다. ‘고갈’된 셈이다.

 IPv6를 도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IPv6는 IPv4를 대신할 차세대 인터넷 주소체계로 총 ‘43억×43억×43억×43억개’의 주소를 생성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실제 IPv6가 도입되면 컴퓨터·네트워크 장비·모바일기기는 물론 모든 백색가전에도 인터넷 주소를 부여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IPv6는 단말 사이의 직접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관리 및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외부에서 집안의 보일러를 조종하거나 형광등을 켜고 끌 수 있다. 세탁기나 전기밥솥도 외부에서 작동시킬 수 있다.

 일본과 프랑스는 이미 수십만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IPv6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국 또한 전국적인 IPv6망을 구축하고 모든 교육기관을 연결하고 있다. 일반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미국의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은 1년 전부터 IPv6 기반의 4세대(4G) LTE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구글은 이미 2008년부터 IPv6 기반의 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이에 앞서 시스코 등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들은 2000년 초부터 IPv6 지원 장비를 출시하고 있고, 윈도우 비스타·윈도우 7·맥 OS·리눅스 등의 운영체제도 IPv6를 지원하고 있다. 단말기, 네트워크 장비, 인터넷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IPv6는 이미 현실기술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IPv4에서 IPv6로의 전환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IPv4가 고갈된다고 하더라도 신규로 인터넷 주소를 할당받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인터넷 사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학습효과’도 한 몫을 한다. 실제 ISDN, ATM 등은 대규모 투자에도 큰 실패를 맛보았는데, 일부에서는 IPv6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 전송기술은 기술의 진보와 시장의 선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장된 경우다. 반면 인터넷 주소는 원자의 핵과 같이 인터넷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로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IPv6가 꽃피기 전에 또 다른 버전의 인터넷 주소체계가 나올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IPv6 역시 개발된 지 20년만에 겨우 상용화 준비를 갖췄다. 다음 버전이 나오기까지는 그만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이미 할당이 끝난 IPv4만으로 그 같은 공백을 메우기는 어려운 상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위험기피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세계경제가 불투명해지면서 개인은 창업과 소비를 두려워 하고, 기업들 역시 투자를 기피한다. 경제적으로 덜 윤택하거나 수익이 줄더라도 안전한 것을 우선하겠다는 것. 하지만 세상에 안전한 것은 없으며, 위험기피형 사회는 결코 성장 잠재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그동안 인터넷 성장의 원동력은 끝없는 확장에 기반한 ‘가능성’ 이었다. 지금은 확장을 멈춘 IPv4 주변에서 서성일 것이 아니라 IPv6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스마트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종렬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simonsuh@Ki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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