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없는 전력신기술 시공사만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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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한 전기공사업체 창고에 4년 이상 방치돼 있는 전선이선공법 장비 및 기구.

 정부가 정한 일부 전력신기술의 현실성이 떨어져 전기공사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설계에 따라 해당 기술을 사용해야 하지만 사고 위험 등 이유로 실제 사용률은 현저하게 낮다. 사고 사실 공개를 고심하는 업체도 포착됐다.

 6일 한국전력과 전기공사업계 등에 따르면 전력신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전기공사업체가 가장 많은 불만을 제기한 신기술은 ‘전선이선기구를 이용한 무정전 배전공법(이하 전선이선공법)’이다.

 한국전력 배전협력회사 전국협의회를 통해 전국 전기공사업체 105곳을 조사한 결과, 공사 현장에서 이 공법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업체는 44곳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61개 기업 중 19곳은 일부 작업에만 사용하고, 42곳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39곳이 감전 등 사고 우려로, 현장 여건상 적용이 어렵다고 답한 기업도 20곳에 달했다.

 전선이선공법 적용 시 감전사고·장비 무게·사용 복잡한 기구 등 현실성이 떨어져 신기술답지 않다는 지적이다.

 20년 업력의 Y대표(51)는 “위 아래로 전압이 흐르는, 높이 1m 남짓한 공간에서 복잡하고 무거운 여러 가지 기구를 들고 작업하기 위험해 공사현장에서 기피한다”며 “한전이 (이 공법을) 설계에 반영하지만 주로 바이패스 케이블공법을 사용하고 한전엔 사용했다고 보고한다”고 말했다.

 한 공사업체 전기공 K(49)씨도 “한전 실사 때나 보고용 사진 촬영 때 말고는 전선이선공법은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 사실이 알려지면 단가업체가 한전 공사 입찰 참여가 어려워 ‘쉬쉬’하는 경우가 많고 밝히지 못하는 감전사고로 다친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선이 이중으로 좁은 간격에 설치돼 감전사고가 종종 발생하지만 사고발생으로 발주처와 계약해지 같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사고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업체 P대표는 “자기 과실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얼마 전 직원이 전선이선공법으로 감전사고로 병원 치료 중인데 산재처리(공개)와 개인 합의(비공개)을 두고 고민 중”이라며 “산재처리를 하는 게 옳지만 단가계약 업체로 다음 입찰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기능공들이 이 공법을 피하고 있어 이번 사고처리가 더욱 고민되는 이유”라고 하소연했다.

 ◇전선이선공법 개발 업체는 8년간 600억 매출 올려=실제 사용률이 절반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체는 지난 8년간 최소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 33개월간 이 업체에 기술료로 187억원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 관계자도 “제조원가 수준으로 1200만원 상당의 장비를 900대 이상 판매했다”고 말했다.

 업체가 받은 기술료는 월 평균 5억6000만원 수준이다. 93개월 동안 500억원을 상회했고 900개 기업에 판매한 장비 매출도 100억원이 넘는다.

 경남의 H대표는 “이 개발업체는 사용하지도 않는 기술료·장비 매출로 8년간 수백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며 “관련기관이 실제 적용실태 등을 조사해 필요하면 환수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업체는 정부가 지정한 전력신기술 87개 중 업계에서 가장 많은 6개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배전협력사 전국협의회 한 대표는 “사용하지도 않는 전선이선공법 때문에 공사업체들이 기술과 장비를 구입하고 있고 품셈(인건비)도 낮게 책정돼 매출 피해도 크다”며 “품셈이나 기술료 책정 등 제도상 문제가 많아 해당기관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력신기술 제도 허점투성이=전력신기술은 국가가 정하는 다른 신기술제도에 비해 허점이 많다는 게 관련 업계 지적이다. 전력신기술에 지정되면 기술개발자(업체)는 기술 사용자에게 사용료를 받는다. 발주처(한전)가 시행하는 공사 설계에 이를 반영, 공사계약서에 명시해 사용을 권장한다. 기술개발업체는 기술료 외 입찰 시 가점을 부여받거나 경쟁 없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업체가 전력신기술에 집중하는 이유다.

 전력신기술을 심사하는 과정에 현장평가가 없고 110명의 심사위원이 한번 정해지만 3년 이상 활동하기 때문에 신청업체들과의 접촉도 쉬워 각종 비리 의혹도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전력기술관리법 신기술 보호기간 연장은 신기술 내용이 시공사례를 통해 기술의 성능 및 효과가 검증된 기술 등에 한해서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추후 현장적용이나 경제성 등에 문제가 생긴 경우 보호기간 3년경과 후 보호기간 연장을 거부할 수 있는데 지경부 등 관계기관이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표준원이 정하는 신기술이나 건설신기술과 달리 전력신기술 기술료 책정도 문제다. 건설신기술은 매출액 또는 직접공사비의 1~5%이내 기술료를 책정한다. 하지만 전력신기술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준용해 신기술 절감액의 70%를 주기 때문에 기술료가 과다하다는 의견이다.

 제도 운영도 문제다. 발주처(한전) 재량이지만 정부입찰계약집행기준에 의해 신기술이 일부 포함된 경우 일반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하는데도 대부분이 수의계약으로 발주되는 혜택을 주고 있다.

 이에 한전 관계자는 “일부 특정 전력신기술에 대해 다양한 불만이 제기돼 여러 차례 감사나 검토를 진행했지만 규정 상 문제될 게 없었다”며 “현장평가 도입이나 심사의원 다양성 확보 등 오해가 될 만한 모든 소지를 제거하는데 전기협회, 지경부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대한전기협회와 대한전력신기술협회에 ‘전력신기술 지정제도 운영 성과 및 제도 개선 방안 연구’과제를 부여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과제 수행 기관인 전기협회장은 김중겸 한전 사장이, 전력신기술협회장은 전선이선공법 개발업체 대표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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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한 전기공사업체 창고에 4년 이상 방치돼 있는 전선이선공법 장비 및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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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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