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순 장편소설 ‘컨설턴트’에는 죽음을 컨설팅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고객들에게 원하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불러오는 시나리오를 짜는 사람이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 물건을 정해진 상황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그만이다. 치밀한 시나리오와 상상력으로 상황을 조작해 한 사람을 비극에 몰아넣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평범한 직장인이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순진하던 부인이 때 아닌 늦바람으로 가출을 한다. 여기에 철석같이 믿었던 동업자들로부터 사기를 당해 퇴직금마저 날려 버린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밀어 닥친다. 그리고 몇 일후, 어두운 지하주자창에서 자살한 직장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자살’이다.
하지만 진실은 따로 있다. 주인공 컨설턴트가 회사 총무팀장을 매수하고 젊은 제비족과 사기꾼을 동원해 멀쩡한 직장인을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현재 상황과 주변 환경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살해당했다는 것을 경찰조차 알아챌 수 없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보고 거꾸로 상상력을 발동해 죽음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라고 소설가는 말한다. 현재와 미래, 그리고 시나리오와 현실이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닌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의미다.
시나리오는 본래 영화 대본을 말한다.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만든 거짓말이다. 하지만 미래에 있을 법한 여러 상황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 시나리오다.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맞는 대응책도 시나리오 기법(scenario planning)을 통해 찾을 수 있다. 80년대 소련 붕괴에 대한 시나리오를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준비한 로열더치셸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나리오 기획의 대가 피터 슈워츠는 소련이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게 되리라는 ‘소련 붕괴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당시 그의 시나리오는 정·재계 사람들로부터 허황된 이야기라고 평가받았지만 그가 시나리오 기획 입안자로 있던 로열더치셸은 그 시나리오를 채택했다. 그 결과, 셸은 소련 붕괴에 대비한 장기적 경영 전략을 수립했고 현재 글로벌 에너지 그룹으로 성장하게 됐다.
요즘 경제 상황을 보면,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주가, 환율, 물가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은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어 진행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경제성장률도 2분기 연속 3%대를 기록하면서 올해 성장률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졌다. 내년엔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복병까지 기다리고 있다. 정부조차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짜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여러 가지로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영자에게 미래 시나리오는 필수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크면,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람에게 그만큼 기회는 많아진다. 실패와 죽음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성공과 삶의 시나리오도 있기 마련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지금부터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꿈같은 성공을 위해서도 시나리오는 필요하다. 이래저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오늘 만든 시나리오가 내일의 성공을 부른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