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학문 융합, 첨단 과학의 산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이 여기에 해당한다. 배출하는 과학기술 인력은 적지만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대학이다.

 국내에 알려진바로는 미국 공과대학하면 MIT를 꼽지만 실제 알차기론 칼텍을 따라갈 대학이 없다. 300명 미만 교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노벨상을 32번이나 받았다. MIT 교수가 1000여명에 노벨상을 9번 받은 것에 비하면 교수들 학문적인 수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화성에 탐사선을 보낸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 탐사선이 어디에서 만들어 졌느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바로 칼텍에 부설로 설립돼 있는 ‘JPL(Jet Propulsion Lab)’에서다. 칼텍 학생 수는 고작 학부 1000여명에, 대학원 1200여명 정도다. 학교 예산은 ‘JPL’을 제외하고 교수 1인당 약 200만달러니까 서울대 교수 1인당 예산 약 5배 정도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칼텍을 벤치마킹한다. 매년 칼텍 교수 1~2명이 와 특강한다. 지난 여름 생명과학 관련 과목을 강의한 롭 필립스(Rob Phillips) 교수는 워싱턴대학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칼텍 물리학과 교수이면서 생물과의 교수이기도 하다. 생물과와 물리학과의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물리학과 강의와 연구도 하면서 생물학과 교육과 연구도 한다. 물리학을 생물학에 접목시키면서 요즈음은 물리학보다는 생물학에 더 많은 열정을 쏟는다.

 그의 관심 분야는 단백질 변형에서부터 배아세포 염색체 단위구조까지 물리학이 접근할 수 있는 생명과학 모든 분야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학문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융합이 가능하려면 인접학문 분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융합을 장려해도 인접 학문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흔히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면서 인접 학문 분야와의 공동 연구를 장려하고 있지만 사실 한 교수가 자기 전공을 뛰어 넘어 다른 학문 분야에서 최고 연구 성과를 내는 학문 간 융합은 요원하기만 하다. 아직도 국내 대학에는 학과 간 벽이 과거 베를린 장벽 벽보다도 더 높고 두껍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생들의 전과, 전학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새 학문을 창출하고 과학적 진리를 새롭게 탐구하기 위해서는 전문 학문 분야의 구분 없이 다양한 방법,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해도 과학적 진리에 접근 하기는 매우 어렵다. 학문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그들 나름대로 자기가 추구하는 연구 방향, 방법 등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가지고 있어 이들에 대한 비판, 영역 침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장애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각 대학 연구 기관들에 시행되고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은 같은 학문 분야 교수가 점심 식사에서 같은 테이블에 동석을 하지 않는 것을 학교 전통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 교수와 식사를 하는 도중에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인문, 사회, 과학, 공학 등 모든 분야를 융합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과학기술 분야 내에서 융합도 중요하겠지만 과학기술과 인문 사회과학 융합도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이동통신 대혁명을 가져온 스티브 잡스 스마트폰도 인문학과 과학기술 융합의 좋은 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학에서, 특히 GIST와 같은 과학기술대학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교육에 대한 강화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 진다. 좀 더 다양한 사고 창출과 기존 틀에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데는 인문학만큼 도움을 주는 학문이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에게 인문, 사회분야 교수의 증원 요청하면 으레 과학기술대학에서 인문사회 분야 교수가 왜 필요하느냐 하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것이 아직 우리나라의 수준이다.

 선우중호 광주과학기술원 총장 president@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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