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식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창의·인성교육을 통한 글로벌 인재양성’이라는 강한 바람이다. 예전에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 교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포항제철지곡초등학교는 선생님들이 모여 ‘창의’라는 이름의 교과서를 직접 만들어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교육성과가 알려지면서 이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 25개 초등학교에서 ‘창의’교재를 일선 교육과정에 적용 중이다.
대구에 위치한 영진고등학교는 미리 짜인 시간표가 없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찾아서 듣는다. 기존 대학에서나 볼법한 광경이 이 학교에서는 일상이 됐다. 창의교육의 바람을 몰고 온 두 학교를 소개한다.
◇창의교육의 요람 포항제철지곡초등학교
포항제철지곡초등학교 학생은 기존 교과서 외에 특별한 교과서를 한권 더 갖고 있다. 바로 이 학교 선생님이 직접 제작한 ‘창의’라는 교과서다. 교과서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창의교육을 위해 특별 제작한 교과서다.
‘창의’ 교재는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용 교재 6권을 비롯해 교사용 지도서 6권 등 총 12권으로 구성됐다. 포스코교육재단 소속 교사 9명으로 구성된 연구위원이 3년에 걸쳐 만들었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서를 직접 개발한 것은 단위학교 가운데 최초다.
신동구 교장은 “학생에게 1회성 이벤트로 창의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융통성, 독창성 등 성향을 키우는 교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학년별 1명의 선생님과 오랜 기간 교단에 섰던 선생님의 노하우를 모두 모아 교재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창의 교과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 교과서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단원별로 창의 성향과 기능을 기르는 데 목표를 두고 생활 속 이야기를 도입해 내용을 구성했다. 또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가운데 올바른 인성이 함양되도록 모둠 활동 내용을 많이 다뤘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을 반영해 녹색 성장과 미래 문제해결 과제를 선정, 거시적 안목에서 글로벌 인재로 살아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추도록 했다.
특히 한 학기에 공부한 내용을 산출물로 표현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산출물은 그림이나 공작물, 연극 등이 대표적이다.
지곡초등학교는 매주 1시간씩 정규 교과시간에 창의수업을 실시, 창의교육 모델도 정립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라는 학교 측의 설명이다. 저 학년일수록 반응이 좋다. 고학년은 1학년 때부터 안 다뤘던 내용이기 때문에 다소 낯선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시간이 지날수록 해소되고 있다는 일선 교사의 설명이다.
‘창의’교과서는 지난 8월 5일 서울시교육청의 검인을 받았다. 충실한 내용을 인정받은 것이다. 곧바로 전국 25개 학교에서 ‘창의’교과서를 창의교육이나 체험활동 자료로 활용키로 했다.
지곡초등학교는 더 많은 학교에서 ‘창의’를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나섰다. 오는 11월 8일 전국의 선생님을 대상으로 교과내용을 공개하고 홍보하는 시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터뷰]김헌수 교감
“이미 10년 전에 지곡초등학교는 창의학습 모형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9명의 선생님이 연구팀을 구성해 3년 동안 준비과정을 거쳐 ‘창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올해 출간한 ‘창의’교재를 바라보는 김헌수 교감은 감정은 남다르다. 주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창의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그 결실이 바로 ‘창의’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곡초등학교 학생들만 위해 교재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창의적 교육방법을 찾는 전국의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선생님들이 이 교재로 창의교육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의교육에 관한 그의 생각은 분명하다. 교과서로 창의교육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창의교육은 체험으로 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생활과 수업 속에 녹아들어야 제대로 된 창의교육이 가능합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창의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지만 개선할 점도 적지 않다고 그는 지적했다.
“창의교육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시에 의해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교육은 보여주기에 불과합니다. 특히 공립은 선생님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창의교육이 힘든데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그는 공립학교에서도 지속성을 갖고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창의연구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수를 비롯해 관련 선생님들을 지원할 방침이다.
◇교과교실제의 선두주자 영진고등학교
영진고등학교로 등교하는 학생들은 아침마다 타 고등학교 학생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수준별 맞춤교육으로 학력 신장 부분에서 대구 동·북부지역에서 최고 명문고로 거듭난 것도 부러움의 이유다. 그보다는 여느 고등학교에 앞서 가장 먼저 실시한 선진형 교과교실제의 영향이 제일 크다. 쉽게 말해 영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필요한 교과목 시간표를 직접 짠다. 대학에서 수강신청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일부 과목이 아니라 모든 과목에 교과교실제를 적용하고 있다.
영진고는 지난 2009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선진형 교과교실제 운영학교로 선정, 50억원을 지원받아 교실마다 전자칠판·전자교탁 등을 설치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전 과목에 교과교실제를 적용, 지난해 7월에는 전국 교과교실제 운영 우수학교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진고등학교 교과교실제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수준별 수업 모형을 다양화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할 수 있다. 또 국어, 영어, 사회, 수학 교과별 미디어센터를 구축해 정보검색, 학습준비, 휴식 공간으로 쓰이게 했다.
특히 일반 교실에서 교과서를 놓고 수업하는 것보다 참여도나 흥미를 배가할 수 있어 학습 성취도가 높다. 획일적 주입식 수업에서 벗어나 참여와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
실례로 영진고등학교의 영어교실은 시청각 시설과 아이패드 등 첨단 교육기자재 활용 수업을 진행한다. 또 국어 교실은 토론식 수업이 가능하도록 교실 배치를 달리한다. 제2외국어 교실은 해당 국가의 문화에 어울리는 환경을 갖춰 놓았다.
홍성태 교장은 “주입식 수업에서 탈피, 학생들의 적극적 수업 참여를 위해 전 과목에 걸쳐 토론·발표수업을 확대 중”이라며 “방과 후 학교를 활성화해 토·일요일에도 방과 후 학교를 개설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성적이 뛰어난 학생에 대해 엘리트 교육을 실시하고 일반 학생들은 적재적소 교육으로 각자의 소질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학생중심의 다양한 편의시설도 창의교육을 지향하는 영진고의 자랑이다. 학생 친화적이고 아늑한 개인별 대형 라커룸은 영진고만의 특색이다. 여기에 학년별 홈베이스, 자유롭게 이용하는 정보 검색 환경, 실시간 공지사항과 정보 전달을 DIS시스템 등도 대표적 시설이다.
[인터뷰]김진상 교감
“교과교실제를 적용하는 학교는 많지만 전 과목 교과교실제를 적용하는 곳은 영진고가 유일합니다. 창의교육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막상 변화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김진상 교감에 따르면 영진고가 교과교실제 선도주자로 불리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배경이 있다.
“당초 영진고가 교과교실제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설립된 지 40년이 돼 노후한 환경을 바꾸고 실험실습이 많은 과목을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여러 방안을 찾다 보니 딱 들어맞는 것이 교과교실제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바꿔나갔죠.”
교과교실제가 정착된 영진고등학교라고 해도 대학진학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물론 진학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학년은 별도의 가까운 공간에 교실을 배치했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움직일 필요가 없어 시간낭비를 줄이고 몸이 덜 피곤하도록 했습니다.”
3학년 학생들은 본과 2층에서 5층의 우측 3개 교실에서 모든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 두 계단만 오르내리면 바로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그는 대학진학과 관련 주위의 우려가 있지만 결과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교과교실제를 시행하면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선생님들이 알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올해부터는 학생들에게 ID카드를 배부해 사용 중입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을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