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관련 이사회 안건에 한 번도 반대 없어
저축은행의 부실이 커졌음에도 사외이사들은 견제와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 7곳 중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대영, 제일, 토마토, 프라임 등 4곳의 이사회 안건을 20일 분석한 결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정 관련 안건에 사외이사들은 한차례도 반대하지 않았다.
저축은행의 걷잡을 수 없는 부실 행보에 제동을 걸 기회가 수차례 있었는데도 방관한 셈이다.
저축은행의 사외이사는 주로 금융감독기관이나 교수, 금융업계 종사자 출신이다. 이들 후보를 추천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는 경영진이 포함돼 있어 태생부터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실` 예견된 이사회 안건 그대로 통과
제일저축은행 이사회에는 지난 1월6일 `부동산 PF 대출 규정 개정의 건`이 올라왔다. 사외이사 4명은 이 안건에 모두 찬성했다.
이번에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PF 대출은 심각한 수준으로 부실을 키운 최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4월5일 안건으로 올라온 `대출 규정 개정의 건`과 `여신거래 기본 약관 개정 및 시행에 관한 건`에서도 반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8월19일 `리스크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측정 결과 보고 및 종합리스크관리계획 수립의 건`에 도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1년 뒤 영업정지 조치라는 파국을 피할 기회였으나 사외이사들은 이를 놓쳤다.
이사회는 연체이자 감면의 건, 대출규정 개정에 관한 건도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프라임상호저축은행의 사외이사 3명은 `PF 대출채권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매각 결과 보고`, `대출이자의 감면`, `리스크관리규정 개정` 등의 안건에 모두 찬성했다.
대영상호저축은행 감사위원회에는 지난해 8월27일 내부통제 운영실태 자체점검 결과 보고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다. 사외이사 2명과 상근감사위원 1명으로 구성된 이 은행 감사위는 100% 찬성으로 이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외이사 4명이 포함된 토마토저축은행 이사회는 지난해 12월23일 토마토2저축은행에 대한 제삼자배정 유상증자 참여 안건을 가결했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저축은행이 대출을 과도하게 하는 등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부실의 원인이다. 내부적으로 제재할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현행 사외이사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이사가 추천한 인물로 채워
사외이사가 대주주와 경영진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후보의 선발 방식 자체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제일저축은행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는 임용준 대표이사가 포함돼 있다. 후보 선발과정부터 경영진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낼 수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다.
사외이사 중에는 전직 지방국세청장 및 모 세무법인 회장, 감사원과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을 거친 인사까지 있었지만, 대출 규정 개정의 건, 부동산 PF 대출규정 개정의 건 등에 모두 찬성했다.
본래의 기능인 감시와 견제는 실종되고 거수기 역할만 한 셈이다.
토마토저축은행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는 고기연 대표이사가, 대영저축은행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임정웅 대표이사가 포함됐다.
이들 저축은행은 경영의 투명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하지만 이는 헛구호에 그쳤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강윤식 박사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는 이사회의 부실도 한몫했다. 사외이사들이 은행의 내부통제, 회계감독, 수시 감사 등의 중요한 업무를 하면서도 독립적으로 판단할 의지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