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 전력 수요에 온 나라 전기가 끊어졌다. 전국 정전사태는 처음이다. 예고 없는 정전에 휴대폰이 불통이 됐고, 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 마감까지 연장했다. 산모가 승강기에 갇히고 몇몇 병원의 전기가 나가는 등 온종일 가슴 쓸어내릴 일이 많았다.
기업도 울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한 중소기업은 원료 수십억원어치를 버려야 할 처지다.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규모가 큰 공장에는 전기를 공급했지만 중소기업이 입주한 지역의 전기를 30분씩 끊은 탓이다. 대덕·대전산업단지, 충남 보령 관창공단 등 곳곳으로 장탄식이 번졌다.
정책 당국이 안이했다. 30도를 웃돈 기온 변화를 주시하지 않은 채 ‘여름 지났으니 이제 발전소 정비나 하려던 것’ 아닌가. 타성적인 정비업무에 젖어 지난달 29일부터 차례로 영광 2호, 울진 2호와 4호 등 원자력발전소(원전) 3기를 멈췄다. 그 바람에 전력 수요 대응력이 더 떨어졌다니 시민의 시선이 고울리 없다.
한 번 멈춘 원전은 다시 가동하기 어렵다. 가동을 중단한 세 원전도 34~73일간 세워둬야 한다. 세 원전의 전력 공급량을 대체할 만한 수단도 태부족이다. 발전량을 기준으로 수력이 1%대, 신재생에너지가 0.3%대에 불과하다. 원전 의존도가 40%대로 너무 높다. 이러니 평년보다 2~7도쯤 높았던 낮 최고 기온에 국가 전력 수요·공급체계가 무방비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언제든 터질 일이었던 것이다.
낯부끄럽다. 일본이 원전 가동률을 24%로 떨어뜨렸음에도 전력난 없이 여름을 난 터라 면목이 없을 지경이다. 일본의 전력 공급체계는 다양했고 수요 변화에 민첩했다. 우리 전력 공급체계는 늘 무거웠다. 수요 변화에 무뎠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에 더욱 힘쓸 이유다.
한 번 가동하면 오래 운전할 수밖에 없는 대량 발전 설비를 끌어안은 채 가쁘게 호흡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우리 전력 생산·공급체계를 조금씩 바꾸자는 얘기다. 정책 당국은 전국 정전사태에 쏠린 비난을 온전히 끌어안고 반성하라. 재연하면 안 된다. 더 다양한 전력 공급체계를 마련하는 데 성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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