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란 특정 환경 안에 사는 생물군과 그 생물을 제어하는 ‘제반 요인’을 포함한 복합 체계를 말한다. 벤처생태계 역시 마찬가지 개념이다. 벤처가 탄생, 성장 그리고 성숙(인수·매각)하기 위해서는 ‘제반 요인’들이 필요하다.
완벽한 벤처생태계가 돌아가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한국은 두 가지 요인이 부족하다. 다름아닌, 엔젤투자와 인수합병(M&A)이다. 엔젤투자는 아이디어 및 기술과 열정으로 뭉친 창업자에게 사람, 돈, 네트워크 등 부족한 노하우를 채워준다. 초기 스타트업(Start-Up)기업의 수호자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털 투자규모 수준의 엔젤투자가 이뤄진다. 한국은 전멸했다가 최근에야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엔젤이 초기 생태계에 중요하다면 M&A는 중반기에 필요하다. 벤처가 시장 안착 후, 본게임(글로벌 시장 개척)을 앞둔 시점에 규모 경제를 시현하기 위해서는 M&A가 필수다. 한국에는 없는 M&A 시장이 미국은 어마어마하게 형성돼 있다. 언론에 나오는 M&A뉴스는 빙산의 일각이다. 대부분 공개조차 안 된다.
미국 벤처캐피털의 자금회수(Exit) 방법 70~80%가 M&A를 통해서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 자금회수는 오로지 기업 상장(IPO)을 통해 이뤄진다. 코스닥에 올릴 수준이 안 되는 회사는 매각해야 하지만, 팔 곳이 없다. 코스닥 시장이 침체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피투자사(벤처기업)는 상장 못한다고 버티고, 벤처캐피털은 속이 탄다.
정부도 M&A 활성화를 위해 고민 중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실리콘밸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공룡 벤처들이 앞 다퉈 인수에 나선다. 생소한 업체를 놓고 혈전을 펼치기도 한다.
실리콘밸리 한 벤처투자자는 “인수는 기술 확보와 함께 새로운 DNA를 수혈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규모가 커져 정체될 수 있는 조직에 충격을 주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다. 우리 대기업들은 이제 M&A를 고민해야 한다. 젊은 피 수혈은 거대 기업에게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