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세 건의 모임에 참석했다. 가는 곳마다 묻는다. ‘안철수가 진짜 (선거에) 나오냐’ ‘사석에선 어떻더냐’ ‘부인 이름이 진짜 영희 맞냐’ 등.
10여년 취재기자 생활 동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뒤통수도 본 적 없다. 기자에게 건 기대는 이해하나, 답은 궁했다. 하지만 안 원장의 출마 여부나 사생활을 떠나, 이미 안철수라는 ‘개인’이 이토록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관전 포인트다.
안 원장에겐 세도 없고, 조직도 없다. 군중 동원이나 각종 모임에 얼굴 내밀며 악수하고 명함 돌리는 것 역시 언감생심이다. 기존 선거공학으로 보면, 안 원장은 안나오는 게 기탁금 5000만원이라도 버는 거다.
하지만 바로 이게 경쟁력이란 것을 안 원장은 잘 안다. 거실TV 앞에 모여 한 개의 채널에 일사불란 꽂히던 시선들은, 각자의 스마트폰·패드로 분산된지 오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기성 언론의 프레임을 거부하며 1인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디지털 수전(手傳)’은 과거 빅마우스로 대접받던 택시 기사의 ‘아날로그 구전(口傳)’을 대체한다.
지금 정보통신기술은 가치의 무게중심을 전체에서 ‘개인’으로, 우리에서 ‘나’로 옮겨놓았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지지하는 정치집단(정당)이 없다’고 답하는 시대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양자택일형 ‘난폭한’ 질문쯤은 ‘쿨하게’ 무시해 버린다. 절대선으로 여겨온 단결과 협동은, 이제 다양과 개성 앞에 고개 숙인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그의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집단의 도덕성은 개인의 그것보다 낮다 했다. 이른바 ‘니부어의 법칙’이다. 특정 조직의 이기심이 야기하는 사회적 불의는 개인의 힘으론 절대 해결될 수 없다며, 대공황 당시 일개 인간의 한계와 무능을 개탄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 그랬던 개인은 각종 스마트 기기로 중무장한 ‘전사’로 진화해 있다. 신학자였던 니부어가 봤다면 ‘할렐루야’를 연발할 일이다.
이쯤에서 궁금증 하나. 신문도 바이라인(기자명) 보고 찾는 날이 올까. 배우 보고 극장 가듯 말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