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실사가 오는 9일까지 연장되면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매각 주관사인 외환은행은 지난 2일 “입찰자 중 STX 요청으로 실사 기한을 일주일 연장키로 했다”며 “형평성을 고려해 SK텔레콤도 실사기한을 9일까지로 변경했다”고 발표했다. 예정된 실사만료일인 2일까지도 입찰안내서를 발송하지 않아, 매각을 늦추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던 채권단이 직접 실사 연장을 선언한 것이다. 입찰자 요청이란 이유를 달았으나, 채권단도 연장을 은근히 바랐던 상황이다.
◇채권단의 시간 벌기 전략?=금융권과 주식시장에선 하이닉스 주가가 지난달 한달 동안에만 52주 저점인 1만5500원까지 무려 40% 가까이 빠지면서, 채권단이 매각 일정 늦추기를 더 원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주 매각 비율을 높여 매각 수익을 극대화하려던 채권단으로선 현 주가를 매각 대금 산정 기준으로 삼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 주가가 오른다는 보장이 없지만, 채권단은 일방적으로 일정을 늦췄다는 비난을 피해가면서도 주가 바닥은 피할 수 있게 됐다.
◇SK텔레콤과 STX ‘동상이몽’=업계에선 입찰이 늦어지면, STX가 좀 더 유리할 것이란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자금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는 STX로선 시간을 더 번 셈이다. SK텔레콤은 연장 발표 당일까지도 일정 유지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사 연장이란 채권단 선택을 정면에서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구주·신주 비율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까지 채권단의 심기를 건드려선 좋을 게 없다.
STX는 입찰자 요청이란 책임을 받아들였고, SK텔레콤은 채권단의 룰을 따른 셈이다.
◇“채권단 신뢰감 잃었다” 비난 거세=지난달 구주와 신주 비율 논란에 이어 정해진 실사 일정까지 늦추면서 채권단은 신뢰와 균형감 측면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처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신뢰를 잃어서 앞으로 예비입찰, 매각대금 산정, 본입찰, 계약 등의 일정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6주 실사 일정을 마지막날 연장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공식적으로 향후 일정과 구주·신주 비율 기준을 명확히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정이 계속 미뤄진다, 기준이 바뀐다 등의 소문만 무성하다 보니 신뢰를 얻기 힘든 상황”이라며 “결정 안된 일, 협의 안된 사항 등의 이야기만 늘어놓지 말고, 채권단이 명확한 기준과 일정을 내놓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취임한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주주협의회 간사인 외환은행이 주도할 일이지, 우리 고유 업무가 아니다”라고 한발 뺐다.
◇3사 주가 전망도 불투명=인수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입찰에 참여한 SK텔레콤과 STX 주가도 짙은 불확실성에 갇혔다. 하이닉스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상황에서, 채권단의 일방통행식 추진에 휘둘리고 있다.
이기근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하이닉스 매각 협상이 계속 미뤄지면 불확실성에 노출된 인수 대상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이럴 경우 매각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주가는 당분간 박스권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이 연구원은 “D램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하이닉스 주가는, 지난달 22일 1만5500원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바닥에 근접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진정세를 띠고 있다”며 “하지만 빠른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기대처럼 하이닉스 주가가 매각 추진 전 기대감을 타고 찍었던 지난 4월의 3만7000원선은 물론, 2만5000원까지도 단숨에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경민·박창규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