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엔 갑자기 임원 비상회의가 소집됐다. 출시를 앞둔 스마트패드 ‘갤럭시탭 10.1’ 국내 모델이 해외와 마찬가지로 구글의 기본 프로그램만 탑재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간 직후였다. 갤럭시탭 10.1을 기다려오던 네티즌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지상파 DMB, 오피스 프로그램 등 킬러 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소비자들의 동향이 신종균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보고됐다. 임원들은 곤혹스러웠다. 당장 다음달로 출시가 예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격론이 오고 간 뒤 신종균 사장이 결론을 내렸다. “갤럭시탭 10.1 국내 출시 모델은 한국형으로 새로 개발한다.”
삼성전자 개발파워의 원천에는 소비자들과 적극적인 교감을 빼놓을 수 없다. 소비자의 욕구를 제대로 읽어내면서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이뤄내는 전략이다.
김헌배 한국·일본개발팀장(전무)은 “한국엔 파워블로거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등 세계 어느 나라보다 깐깐한 소비자가 많다”며 “한국 소비자들에게 통하면 세계에서 통하는 조건이 기술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탭 10.1 한국형 모델은 깐깐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두 달 만에 대변신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지상파DMB는 물론이고 입시강좌·내비게이션·오피스 등 다양한 앱이 탑재됐다. DMB칩 등을 넣고도 세상에서 가장 얇은 8.6㎜의 두께도 유지했다. 신종균 사장은 출시 발표회장에서 “우리나라 고객들에게 최적화된 스마트패드”라고 소개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경쟁사에 없는 지상파 DMB 기능에 대해 네티즌들의 찬사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소비자와 교감은 발빠른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업그레이드 정책으로도 표출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안드로이드2.2 버전 ‘프로요’를 사용 중인 단말기를 새 버전 ‘진저브레드’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발표했다. 안드로이드 단말기 업체로서는 가장 빠른 업그레이드 계획 발표였다. 이 같은 발표 이후 지난 달까지 13종의 단말이 진저브레드로 업그레이드 됐다.
‘진저브레드’는 기존 ‘프로요’에 비해 게임 등 주요 애플리케이션 실행 속도와 편집기능을 향상시켜준다. 배터리 성능도 높여준다. 한마디로 ‘갤럭시S’ 이용자가 업그레이드로 1년 뒤에 나온 신제품 ‘갤럭시S2’를 쓰는 것과 비슷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새 OS가 나오면 제조사에 빠른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문제는 OS 업그레이드에는 새로운 스마트폰을 개발할 만큼 많은 개발인력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을 제외한 다른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이 ‘진저브레드 업그레이드’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헌배 전무는 “OS 업그레이드는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하드웨어 호환성 등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사실 하나의 신규 모델을 개발하는 것만큼 힘든 작업”이라며 “13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는 대신에 신모델을 개발했다면 아마 7~8종의 신제품이 새로 나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업그레이드 전략이 궁극적으로 삼성전자의 개발파워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언제 어디서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스마트폰 시대에는 발빠른 업그레이드 능력도 중요한 기술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구글도 새 OS 소스를 가장 먼저 삼성전자에 공개하고 업그레이드를 지원하는 양상이다. 고홍선 애니콜영업팀장(상무)는 “삼성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사면 향후 사후서비스도 가장 잘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좋은 마케팅 포인트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와 교감 전략은 이제 해외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북미·유럽 등 현지 개발자들도 크게 늘려 현재 1만여명에 달하는 무선단말기 개발인력 가운데 20~30%가 해외에서 근무할 정도”라며 “일본에선 우리나라 TDMB와 다른 원세그로 DMB 방송을 지원하듯 현지 시장여건과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개발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