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애플 진영 위기감 고조…국내 업체, 발상 전환해야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개발자회의무선통신의 전통적 강자 모토로라가 구글에 인수되고 PC업계 1위 HP가 PC사업에 손을 떼면서 애플발(發) 지각 변동이 본격 시작됐다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애플의 특허전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했던 불가피한 전략이었고 HP의 PC사업 분사 역시 아이패드, 맥북에어 등 제품 혁신에 밀린 결과라는 해석이다.
애플의 독주와 함께 이를 유지하기 위한 애플 생태계의 폐쇄성이 계속 이어질 경우 경쟁사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애플vs반(反)애플`의 구도가 고착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PC제왕 HP, 모바일PC는 애플에 밀렸다 = 22일 리서치기업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2분기 무려 1천360만대의 모바일PC를 팔아치우며 970만대 판매에 그친 HP를 훌쩍 넘어섰다. 모바일PC는 넷북, 노트북, 태블릿PC 등을 포함한다.
PC시장의 지형을 통째로 흔든 주역은 단연 애플의 아이패드다.
2분기 모바일PC시장 분석을 위해 태블릿을 PC군에 처음 포함시킨 디스플레이서치는 2분기 태블릿 출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 이상 성장했으며 이 가운데 65% 이상이 애플의 아이패드였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앞세워 PC시장을 흔들었지만 정작 맥, 맥북에어 등 자사 PC제품의 시장지배력은 오히려 강화하며 PC산업의 쇠퇴가 단순히 구조적인 문제만은 아님을 증명하기도 했다.
노트북 시장은 지난 1분기보다 오히려 2% 감소했지만 맥, 맥북에어 등 애플 랩톱 제품의 출하량은 시장 평균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 체서피크 시스템(Chesapeake System)의 이사 닉 골드는 "애플은 아이패드가 없었더라도 랩톱 제품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PC시장에서도 사실상 애플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암시했다.
결국 HP는 지난 19일 PC사업부 분리를 선언하며 패배를 시인했다. PC 제왕의 자존심이 아이패드를 앞세운 애플에 의해 무너지기까지는 채 2년의 시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모토로라 인수한 구글 "애플 때문에…" =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배경에도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밀린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인수합병으로 끌어모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공개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장해 나가던 구글은 안드로이드 역시 무료로 개방하며 iOS와의 대결에 승부수를 띄웠다.
무료로 개방된 서비스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구글은 이 과정에서 모바일 검색 광고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승승장구하는 구글의 뒷덜미를 잡아챈 것은 애플이 주도한 특허 전쟁이었다. 삼성, HTC 등을 중심으로 한 안드로이드 진영이 세를 확대하자 애플은 이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특허 전쟁은 경제적 이득이 아닌 사실상 시장 퇴출을 목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나 노키아 등과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독일의 지적재산권 전문가 플로리안 뮐러는 "MS는 로열티만 요구하는 협조적인 특허 보유기업이기 때문에 경쟁사를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애플은 다르다"며 "지적재산권은 자신들만의 것임을 명확히 하고 법정 분쟁을 선호함으로써 타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구글은 애플의 전방위적인 소송으로부터 안드로이드의 생존 자체를 지키기 위해 더욱 막강한 지적재산권이 필요했고, 막대한 원천기술을 보유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비주류로 몰락한 모토로라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구글이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을 인수한 것은 최근 몇 년간 구글의 인수합병 사례를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애플의 힘은 `사용자 경험` = PC시장을 재편하며 1위 HP를 물러나게 했고 구글에 125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불가피하게 했던 애플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아이폰과 iOS로 대표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사용자, 개발자, 서비스 제공자 등이 자발적으로 구축해 낸 생태계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튠즈 시스템을 통해 이미 10여년 전부터 콘텐츠 시장을 장악해왔고 아이폰을 통해 전 세계 개발자들까지 앱스토어로 끌어들였다.
아이폰 외에 아이팟, 아이패드 등 2억대에 육박하는 소비 단말기가 존재하며 철저한 저작권 관리로 유료앱 매출도 높은 앱스토어는 전 세계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최근 미국의 IT블로그 기가옴(GigaOM)이 인용한 투자은행 파이퍼 제프레이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앱스토어 사용자들의 애플리케이션당 평균 소비지출은 지난해 1.29달러에서 1.48달러로 15%가량 늘어났다.
휴대전화 제조사 간 사용자환경(UI)이 달라 각각의 단말기마다 최적화 과정이 필요하고 불법복제에도 취약한 안드로이드와 달리 개발 이후 관리가 간편한 점도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는 iOS의 장점 중 하나다.
이 같은 장점을 기반으로 사용자와 개발자, 서비스 공급자 간 탄탄하게 구축된 애플의 생태계는 지난 6월 발표된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기기 간 서비스 연동을 강조한 아이클라우드는 형식적으로는 애플의 내부 폐쇄전략이었지만 콘텐츠와 개발인력이 부족했던 경쟁자 입장에서는 애플을 제외한 진영의 고립을 의미했다.
하드웨어 개발에 올인한 국내 제조사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생태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퓨젯 시스템(Puget Systems)의 최고경영자 존 바흐는 "애플은 가격에만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며 비용이 들더라도 사용자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며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현재 애플이 1인자임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