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견·중소 스마트기기 업계의 인수합병(M&A)은 시장구조개편 과정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세계 스마트기기 시장이 초반 개화기를 지나 소수 메이저 중심으로 재편되는 약육강식 경쟁시대로 본격 진입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HW) 제조 기술력에만 의존한 국내 기업의 한계도 조금씩 드러나는 상황이다.
하지만 M&A 전망은 엇갈린다. 대내외적으로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마땅한 인수자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LG 등 국내 기업의 관심도가 낮아 해외 기업에 넘어갈 가능성도 높다.
◇세계 최고 HW 경쟁력이 ‘매력’=M&A 매물 최대어로 꼽히는 팬택은 올 상반기 세계에서 가장 빠른 1.5㎓ 듀얼코어 스마트폰 ‘베가레이서’를 출시했다. 다음 달부터 미국과 한국시장에 4세대 통신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도 출시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HW 품질은 삼성전자 등 글로벌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SK텔레시스도 조만간 1.5㎓ 듀얼코어 스마트폰을 내놓고 이어 내년 초에는 LTE폰도 출시할 방침이다. 엔스퍼트·아이리버 등은 미국 스프린트와 구글 전용 단말기 개발 파트너로 활약할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깐깐한 한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고 삼성·LG 등 대기업과 경쟁하다 보니 생긴 경쟁력이다. 이 때문에 기업을 인수하면 하루아침에 HW 단말 제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매력으로 꼽힌다.
◇해외 제조사·통신사와 빅딜 가능성=문제는 HW 경쟁력이 국내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M&A 여력이 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HW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모토로라 인수를 검토했지만, 시너지 효과가 떨어진다고 중단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빅딜이 성사되려면 해외 자본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고중걸 로아그룹 연구원은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스마트폰 시장 영향력을 넓히려는 화웨이·ZTE 등 중국 제조사나 전용 단말이 필요한 미국 통신사업자 등을 유력한 후보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원가 경쟁력을 갖춘 중국 기업이 품질 경쟁력까지 갖추면 시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4G 단말 전환 경쟁이 한창인 미국 통신사업자들도 차별화된 단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몇몇 기업은 물밑에서 이들과 사전교감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값 받기·먹튀 차단 등 과제로=해외 매각을 추진하려면 낮은 글로벌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팬택은 하반기 LTE폰 등 전략폰을 앞세워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것이 과제로 꼽히고 있다. 당장의 M&A 추진보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미국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한 국내 중소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비오이 하이디스’ ‘쌍용차’ 등과 같이 중국 자본에 섣불리 넘겼다 기술력만 뺏기는 ‘나쁜 M&A’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주주들의 ‘캐시아웃’ 압박 때문에 소탐대실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