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중국의 ‘한글 공정’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이 각자의 모바일 자판 입력방식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이 중국이 한글 자판 입력방식 표준 선점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이들이 분개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표준 선정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한글공정에 맞서, 한 국어학자가 오히려 중국어를 한글로 입력하는 방식의 모바일 자판을 고안했다. 이 ‘역공’의 주인공은 정원수 충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온누리한글예술 대표).
정 교수는 “KT와 공동으로 개발한 ‘모바일기기용 중국어 한글 입력기’ 애플리케이션을 이달 말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앱은 정 교수가 10년 연구 끝에 개발한 ‘중국어 표기문자로서의 한글 입력방안’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2008년 11월 특허 등록을 마쳤다.
현재 모바일에서 중국어를 입력하려면 로마 문자로 발음을 입력한 후, 한자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자로 바꾸지 않으면 의미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과정이 번거롭다. 하지만 한글은 다르다. 한자와 마찬가지로 음절 단위의 문자이기 때문에 기존 한글에 성조만 표시해주면 한자로 바꾸지 않아도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한자는 습득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중국의 문맹률이 50%에 달한다”며 “중국 뿐 아니라 인도·태국·베트남 등 많은 국가가 자신의 문자로 직접 모바일 자판 입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임시방편으로 로마 문자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한 국가에만 수천여개 언어가 있는 아프리카 대륙 등에는 문자가 없는 민족도 부지기수다.
정 교수는 이들을 모두 한글을 기반으로 모바일 산업의 수출을 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는 “단순한 외국어 입력을 위한 한글 자판이 아니라 한글을 기반으로 우리 IT산업의 영향력을 꾀할 수 있는 ‘한글 플랫폼’ 확산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중국인 셈이다. 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들어 대표적인 디지털서체 기업인 윤디자인연구소와 중국어 성조표현 한글 서체 개발 계약을 마쳤으며, 유니코드 목록에 성조를 표기한 한글을 포함시키는 일도 추진이 순조롭다. 이와 함께 러시아어와 일본어·인도어·아랍어·태국어 등의 한글 표기법 방안 연구도 마쳤다.
“중국, 아프리카의 소수 민족도 스마트폰을 쓰게 될 날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입니다. 찌아찌아족의 사례가 모바일 산업에서 확산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 교수는 한글과 모바일 산업의 결합에 대한 강한 확신을 내비쳤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