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는 중소기업 MRO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MRO 실태를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김황식 총리,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 답변(6월 7일)
“MRO는 정부의 조달청이 하는 역할을 기업집단에서 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으나, 운영되다보니 도를 지나쳤다. 페어플레이가 시장에서 작동되도록 하는 데 앞장서겠다.”-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전경련 조찬강연(7월 6일)
MRO(소모성 자재구매대행)가 우리 사회 공적이 됐다. 대·중기 상생협력의 최대 걸림돌 같다.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두드려 팬다. 이 대열에 빠지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될 것 같다.
MRO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물론 MRO 업체를 계열사로 둔 일부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나 문어발식 영역 확장이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결국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은 것도 사실이다. 반성할 일이다.
물론 MRO 업체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도 있다. 잘못 알려진 부분 중의 하나가 대기업이 두부·순대까지 만드냐는 거다. 이건 사실 MRO 비즈니스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인데도 대·중기 상생에 가장 나쁜 사례로 등장하며 MRO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얘기된다.
요즘 울가망 MRO 업체 관계자들이 웃을만한 일도 있다.
“MRO 비즈니스 10년 동안 주변에서 뭔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이제 MRO를 알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10년 홍보를 한순간에 다 한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이다. MRO도 잘 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제조업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어도 금융과 유통은 아직도 후진국을 못 면하고 있다. 금융 부분은 이미 IMF사태가 증명했다. 기업들이 MRO 도입 이후 그동안 세금계산서 누락 등 엉망이던 후진적인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만든 사실은 지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에 한·미, 한·EU FTA로 인해 유통시장 개방이 본격화한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그레인저는 세계 유수의 MRO 자재, 컨설팅 서비스 및 관련 정보 공급에 이르기까지 MRO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각국에 진출해 있다. 프랑스 KLM이나 독일 LTU테크닉은 하이테크 MRO 분야 글로벌 기업이다. 지금 MRO 기업을 키우지 않으면 미국이나 중국 등 외국 MRO 기업이 국내 시장을 차지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할인점 업계를 예로 들어보자. 세계에 월마트가 안들어 간 나라가 몇 군데 있는가. 세계 1, 3위 할인점 업체 월마트와 까르푸가 불과 2년 간격으로 철수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토종 이마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소업체 사장은 이런 말을 한다. “MRO 문제는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아도 말을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중소 소모품업체들은 MRO 협력사가 되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셈이어서 누구나 바라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MRO 편을 들었다가는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입니다.”
대기업 MRO의 대안으로 중소 MRO 업체가 거론된다. 실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MRO 비즈니스는 중소업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구매 비용 절감을 위해 전국 단위 물류창고와 배송체계를 갖춰야 하는데 이게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인가. MRO 비즈니스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일방적인 때리기보다 차라리 중소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주문하는 게 맞다. 아울러 MRO 업체도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아무쪼록 이번 MRO 문제에 본질이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홍승모 전자산업부 부국장 smhong@etnews.com